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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작가
숨은 영웅 박어둔은 독도를 우리 섬으로 만드는데 기여를 한 위대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때 울릉도와 독도에 침입해 이 두 섬을 불법 점유한 뒤 무려 100여 년을 왜인들이 자기들의 봉지로 삼아 어복을 채취해갔다.

 조선의 조정은 태종 이래 섬을 비워놓는 공도정책과 섬의 주민을 쇄환(刷還, 원거주지를 이탈한 자를 잡아 다시 원거주지로 되돌려놓는 일)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잠시 비워놓은 집에 도둑 들 듯이 이 틈을 타서 왜인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들어와 자신들의 소굴을 만들어놓았다. 박어둔은 3년에 한번 ‘國主之用(왕에게 바치는 봉진품)’으로 울릉도에서 전복채취를 하였고, 1692년, 1693년에는 연속적으로 울산 사람과 함께 20∼40명이 울릉도에 건너갔다. 박어둔이 공초에서 ‘울릉도에 간 것이 별도로 숨겨서 말할 것이 아니다.’라고 한 진술로 봐서 그들은 공공연히 어복을 채취하기 위해 울릉도, 독도를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

1693년(숙종 19) 4월에는 박어둔이 세 척의 배에 안용복과 울산어부들 40여 명을 태워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며 우리의 섬을 지켜내었다.

 박어둔이 배에 벼 25석과 은자(銀子) 9냥 3전(현 시가 약 7천만 원) 등의 물건을 싣고 울릉도에 간 것으로 봐서 그는 울릉도에서 상당기간 활동하며 머문 것으로 보인다.

박어둔이 안용복과 함께 울릉도로 어로활동을 갔다가 일본 어부들로부터 피랍된 사건을 전하는 숙종실록의 사료를 보면 1693년과 1696년의 안용복과 박어둔의 울릉도 독도행은 박어둔을 위시한 울산지역의 어채인들을 물적 인적자원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693년의 박어둔과 안용복이 울릉도를 향할 때 울산에서 출발했으며, 열 명 중 아홉 명은 울산사람, 한 명이 동래사람 안용복이다.

 숙종 20년(1694) 8월에 경상감영이 올린 장계를 보면, ‘朴於屯.安龍福.金加乙洞.金自信.徐化立.李還.梁淡沙里.金得生 등이 표류하다가 무릉도(울릉도)에 닿았다’고 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곳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울산 어채인이다.

 동래사람 안용복도 어머니가 울산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울산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울산과 동래의 부단한 왕래 속에서 박어둔 등의 울산 어채인들과 안용복은 오랜 친교를 맺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조선후기 울산지역은 울릉도 독도 해역으로 출어하는 어민들의 거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안용복이 1696년 4월 2차 도일했을 때 일본 호키주 태수가 ‘왜 박어둔은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안용복은 ‘박어둔은 울릉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술했는데 1차 도일 이후에도 박어둔은 지속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오간 것을 알 수 있다.

 울릉도행에 관한 조선시대의 자료들을 보면 태종~세종년간에 보이는 자료들은 주로 강원도 동해안 쪽의 연해민들이 울릉도로 부세수탈과 군역을 피하기 위해 가는 것이 주된 특징이라면 숙종조를 전후한 시기에는 박어둔 안용복 등이 울산을 거점으로 하여 울릉도행을 오가는 등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결국 1693년 4월 박어둔·안용복 납치사건으로 인해 일본이 울릉도 쟁계(죽도일건)이라는 영유권 분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1696년 1월 28일 도쿠가와 막부가 죽도 도해 금지령을 내림으로써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땅임이 입증되었다. 그 과정에서 박어둔과 안용복 그리고 울산의 어채인이 ‘울릉도 쟁계’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숨은 영웅을 발견하고 발굴해내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사실 영웅들은 무수히 많다. 이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숨은 영웅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인물을 알아보고 등용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백락(伯樂)은 말을 잘 감정하기로 유명한 자이다. 한유는 말한다. ‘백락이 있은 후에야 천리마가 있게 된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늘 있지 않다(伯樂然後有千里馬, 千里馬常有而伯樂不常有).’ 천리마가 있을지라도 알아보지 못하면 말구종의 손에서 욕이나 당하며 짐이나 끌다가 죽게 된다.

그래서 범부들은 천리마가 울어도 그 뜻을 알아주지 못하면서 채찍을 때리며 말하기를 ‘천하에 말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숨은 영웅 박어둔의 담론이 더욱 풍부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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