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세계에 들어온 날부터 ‘첫’을 많이 발견합니다. 살면서 잊고 있었던 ‘첫’이었는데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네요. 문학을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알지 못했을 처음들이었지요."

인천 삼산동의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일약 주목받는 수필가로 떠오른 김순희(47)작가가 최근 자신의 바뀐 세상에 대한 소감이다.

강원도 영월의 산골마을 운학에서 태어나 한 가정의 아내·엄마로 살며 40여 년간 잊고 지내던 자기정체성의 뿌리를 끌어올리는 첫 번째 작업으로 최근 펴낸 산문집 「순희야 순희야 」가 화제다. 40대에 문학계에 입문한 늦깎이 수필가의 글이지만 기대 이상의 수준작이라는 평이다.

김 작가는 "회계 경리로 직장을 다니고 가정주부로 살아온 나의 인생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며 "글을 쓰면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며 삶이 감동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말을 꺼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또 "내놓은 작품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읽혀질지가 걱정이다"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하지만 들리는 평은 매우 좋다. 김윤식 시인은 "시에 어울리는 짧은 글이 눈부시다"라는 평을, 문학평론가인 문광영 경인교육대학교 교수는 ‘맛깔스러운 작품성’을 그의 최고 장점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그의 글에는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 프로그램 ‘응답하라 1988’처럼 순간의 일상사를 되새김질하고 찬찬히 들여다봐 지혜와 깨달음이 있는 세계로 독자를 이끄는 진정성이 묻어 있다.

수필 ‘홍옥’에서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백설공주가 독 묻은 사과를 먹고 죽은 거 알지? 잘못 알려진 거야. 사실은 백설공주가 난쟁이들에게 사과를 빼앗길까봐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다 그렇게 된 거야. 그러니 목에 걸리지 않게 꼭꼭 사과를 씹어 먹어라"라고 평소에 다정하게 말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거미줄 같은 실핏줄이 끈적끈적 엉겨 있어 힘겹게 입을 놀리셨다. "눈이, 많·이·아·프·다"

아버지 눈을 벌렸다. 눈 가까이 입을 가져갔다. 충혈된 눈동자를 혀끝으로 핥았다. 시원하다고, 고맙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꾹꾹 눌렀다. 그때 알았다. 심장이 아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옛날 영월 산골에서 벌어진 이런 따뜻한 글을 읽은 영월군수는 사과 홍옥 한 상자를 그에게 보내 답했다.

김 작가는 "독자들께서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읽고 메일과 문자로 응답해 주실 때마다 초보 작가인 저로서는 너무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불교 신자인 큰언니와 예수 사랑이 깊은 셋째 언니를 그린 ‘보살언니 권사언니’가 이 책의 최고 수작이라는 평가다. 직접 읽어 보면 어려울 수도 있는 종교 이야기를 시적 감성과 재치 있는 구성미로 풀어내 오히려 마음에 다가오는 향기가 은은하다.

사실 수필가 김순희는 경인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서 글을 배워 등단까지 한 열혈 작가다. 4년 동안 강의를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또 평생교육원을 나온 수강생 중 최초로 책을 펴낸 이로도 유명하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생각으로 백지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해 작가로 불리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컸죠"라며 "저처럼 한 번 글쓰기에 도전해 보세요. 노력하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답니다"라고 조언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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