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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인천대 외래교수
누군가 시골농촌의 이웃 사이에서 ‘누가 나쁜 이웃인가?’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흔히 나쁜 이웃이란 ‘이웃의 가축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한 이웃이란 ‘이웃의 가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기 집 담장을 잘 쌓고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다면 이웃에 대한 선의는 경계를 만듦으로써 가능하다는 일반적인 명제가 항상 성립하는지? 그리고 이처럼 담장이나 울타리가 인간관계를 지탱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필요조건인지에 대한 물음을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는 ‘담장을 고치며(Mending Wall)’란 시를 통해 묻고 있다.

그는 미국 보스턴 북쪽의 뉴햄프셔 주 델리에 있는 농장에서 9년간 사과나무를 가꾸면서 많은 시작을 남겼다. 그의 농장 옆에는 소나무를 재배하는 농부가 있어 봄이면 겨우내 무너진 돌담장을 함께 고치자고 한다.

시인은 자기 소유의 사과나뭇가지가 이웃의 솔방울을 해칠 수 없기 때문에 담장 고치기가 의미 없다고 하지만 이웃 농부는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속담을 그저 습관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2015년 한 해를 돌아보면 시리아 난민 사태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자국 국경에 장벽을 높게 쌓은 해이기도 하다. 어느 해외 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에는 5개의 장벽이 있었으나 현재는 65개로 증가됐고, 그 ¾은 최근 20년 사이의 것이라는 사실은 세계화시대를 무색하게 하는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존에 설치된 장벽들이 고비용 저효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웨스트뱅크와 미국의 멕시코국경장벽의 경우 천문학적인 비용 투입을 했으나 의도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벽 밑으로 터널을 파기도 하고, 돈으로 위조 서류를 만들고, 뇌물과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국경을 건널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요새화된 국경은 불쌍한 이주자와 난민들에게만 효율적인 방어수단이 되고 있다.

 더욱이 국경 감시는 많은 인원과 장비, 카메라, 이동센서, 드론, 헬기와 차량 등의 운영경비가 소요된다.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중국의 만리장성도 뇌물로 무용지물이 돼 수십 년에 무너지고, 독일 베를린 장벽도 30년 만에 무너져 두 곳 모두 관광명소로 유지될 뿐 역사적으로도 장벽 설치는 별 효용이 없는 것으로 증명됐다.

단지 담장과 울타리는 사람과 상품의 이동을 늦추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인 트럼프와 같은 정치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멕시코국경의 장벽 설치를 즐겨 거론하는 것은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국경장벽 문제는 유럽의 난민위기 해결담론으로 등장했다. 2015년 지중해를 경유해 유럽에 도착한 난민은 75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쟁과 박해로 자국을 떠난 전 세계 유랑민 6천만 명의 일부에 해당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할지 유럽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왜냐하면 현재 유럽은 난민을 수용하는 그룹과 거절하는 나라들로 나뉘어져 서구 문명의 충돌까지 예상된다. 수용하는 쪽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인종이나 국가정체성보다 중요하며, 누구든지 자국의 국법을 따르면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있고 자국의 역동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울타리나 담장의 장벽은 인간성에 대한 모욕으로 여긴다.

반면에 거절하는 쪽은 난민의 수용은 자국 정체성의 위협이 될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역동적인 시민사회에서 통합될 수 없다고 믿으므로 가능한 높고 긴 장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두 개의 그룹이 하나의 유럽이란 가치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민주적 전통의 기본 원칙이 흔들릴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1차 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인 오스만제국의 영토인 아라비아반도를 임의로 분할해 통치한 것이 오늘의 중동 사태 원죄로 작용해 그 대가를 유럽이 갚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가을 터키 이스탄불 시내에서 시리아난민 아이들이 도로에 몰려 나와 지나가는 자동차문짝을 잡고 달려가면서 돈을 달라고 소리치는 슬픈 광경을 봤다. 오늘 성탄절 예수께서 그 아이들의 선한 이웃이 돼 주시기를 기도 드린다. 이러한 담장이나 울타리는 흔히 소유의 경계표시이다. 또한 상이한 종교와 사상, 이념, 인종, 전통, 문화, 행동양식 등의 가치관이 서로 소통이나 융합되지 못한 폐쇄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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