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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우리는 헌법 제1조에서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인데도 올 한 해 특정 부류들이 국정과 사회를 농단했으니 2015년 대한민국은 불법공화국이었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어느 기관보다 법을 준수하고 바른 정치를 해야 하는 기관이다. 그러한 국회가 앞장서서 법을 우습게 여기고 어기기를 여반장(如反掌)으로 한다면 어느 누가 법을 지킬 것인가.

 필자는 일전에 ‘국해(國害)의원과 금배지’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국회(國會)’로 표기해야 할 것을 나라를 해한다는 의미의 ‘국해(國害)’로까지 폄하하는 ‘결례(缺禮)?’를 범한 적이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며 애써 자위하지만 지금까지 영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임기를 온전히 다 채우지 못하고 이렇게 도중 낙마하는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국회의원들조차 당선과 동시에 ‘예비 피고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20대 총선이 목전에 이르렀는데도 선거구 획정 하나 못하고 자당(自黨)의 이불리(利不利)를 따지면서 법정시한까지 넘긴 것이 그 대표적인 국회의 법 경시 사례라 하겠다. 민생법안 등 법정기한을 넘기는 것은 다반사(茶飯事)이기에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약한다.

 우리가 믿고 바랄 곳은 그래도 국민의 대표 기관 국회다. 이러한 국회가 제 기능과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일국의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도 국립호텔(교도소를 이르는 은어)에 가고, 10여 년 동안 교육감을 역임한 사람이 부하들에게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법정구속돼 범털(교도소에 복역 중인 저명인사를 칭하는 속어)신분이 돼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타인이 저술한 책을 표지만을 갈아치는 수법으로 책을 발간한 ‘표지갈이’ 교수들이 무더기로 기소되기도 한 한 해다.

 대기업 회장들이 횡령과 탈세 등으로 감옥에 가고, 대학 운동부 감독이 금품을 받아 챙기는 정도의 사건은 이제 뉴스감도 되지 못할 정도다.

 병이 고황에까지 깊이 들어 수술조차 불가능한 방산(防産)비리는 백약이 무효할 정도다. 정부가 내놓은 ‘방위사업비리 척결 종합대책’도 ‘회전문 이론’이 살아있는 한 의미가 없다. 국가의 국방책임자들이 뇌물비리에 연루돼 줄줄이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고 있다.

 전시(戰時)도 아닌데 육해공군 참모총장들이 하나같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모자와 어깨에서 빛나고 있어야 할 별들이 무수히 떨어진 한 해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한일 기자 간 토론회에 다녀왔다는 한 언론인은 "한국이 과연 법치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수모적인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 21일 각 부 장관에 내정된 장관 후보자들 중 일부 내정자들이 역시 우려대로 부동산 투기, 자녀 외국 국적, 위장전입 등의 문제가 드러나 청문회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공직자로서는 자격에 큰 흠이 아닐 수 없다.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고 나아짐이 없이 해마다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어쩔 수 없고 미욱함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연말이면 교수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있다. 연초에는 새 희망을 담은 의미의 단어가 선정된다.

 하지만 한 해의 결산이라 할 수 있는 연말 사자성어는 그렇지가 못하다. 언제나 목표한 희망의 사자성어를 달성하지 못하고 암울한 한 해를 마감하곤 하는 우리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수들은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의미를 담은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교수들은 연초에 을미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의 ‘정본청원(正本淸源)’을 선정했었다.

 나흘 후면 병신(丙申)년 새해다. 명년에는 무지와 불법이 사라지고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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