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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호 영림목재㈜ 회장
금년에도 어김없이 턱밑에 세밑이 다가왔다. 여느 해처럼 새해를 구상해 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이 해를 돌아보면서 아직도 결정 못한 걱정스러운 한 가지 일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동안 내가 해 온 일들을 일단 정리하고 기록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다. 뭐 그리 대단한 경험을 가진 것은 아니고 딱히 강조할 내용도 없으나, 만약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그나마 말이나 글로 남기지 못할 입장이 된다거나 기억력이 쇠퇴해진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런데 60세가 됐을 땐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어 미뤘지만 65세가 된 후에도 100세 시대 운운하니 여전히 난감하기만 했고, 더불어 동 시기에 정치인들의 책들이 쏟아져 나와 시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70세에 가면 그땐 또 120세 대세론에 밀려 그저 청장년에 머무르는 행복한 고민(?)이 오면 그때도 삶의 발자취인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하긴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유쾌하고 패기 있게 성공담을 담은 자서전을 여럿 내놓기도 했다. 나이를 거듭 고민하는 이유는 자기성찰이 충분치 않은 시점에서 본인 기록을 쓴다면 과시나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어 이를 경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유사한 집필들을 조사해 봤다. 자기의 성장 과정을 회고하고 성장 내력과 정신적·지적 발전을 기록한 전기(傳記)가 자서전이다.

자서전이라는 말 그 자체는 19세기에 나타난 비교적 새로운 것이나, 고백록·회상록과 같은 형태는 예부터 있어 왔다고 한다. 일기, 편지, 비망록들도 거의 의도적인 자서전이라 인정될 수 있으며 또한 자기 생활을 뉘우쳐 고백한 기록인 참회록도 동일한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같은 시대 또는 같은 종류의 저작물을 출판한 전집(全集)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의 모든 저작물을 한데 모아서 한 질로 출판한 책도 동일하게 칭한다.

그리고 영웅의 일생과 업적을 기려 전기로 만든 것을 영웅전(英雄傳), 여러 사람의 개별적인 전기를 차례로 적은 것을 열전(列傳)으로 구분한다.

 또 사물을 대할 때의 느낌이나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모아 엮은 수상록(隨想錄)과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을 적은 명상록(瞑想錄) 그리고 지난 일을 회상해 적어 기록한 회상록(回想錄)이 있다.

이 외에 에세이(essay)란 자기의 느낌이나 의견 따위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적은 산문·수필을 말하며,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인 실록(實錄) 등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최초의 자서전으로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인 「명상록」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일컫는다. 산문문학(散文文學)이 융성했던 17세기 후반 이후에 자서전이 비약적으로 많이 나타났는데, 특히 문학적인 것으로 프랑스의 작가이며 사상가인 J.J.루소(1712~1778)의 「고백록」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로마 제정시대의 대표적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오랜 세월인 지금까지도 수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 바, 예컨대 "복수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수법을 답습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생생하게 갈파하고 있으며, "인생이 짧을수록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몽테뉴의 「수상록」도 인간에 대한 위대한 통찰을 꿰뚫고 있다. 독일의 의사이며 아프리카에서 봉사한 알버트 슈바이처의 「에세이집」도 유명한데,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탁월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다.

 고교시절 동인천역 앞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구입한 백화점 왕 J.C 페니의 자서전을 읽으며 사업가의 꿈을 가졌던 기억이 있고, 최근에 철강왕 카네기의 여러 자서전을 독파했는데 그 중 사후 그의 부인이 발간한 자서전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삶의 발자취를 옆에서 생활하고 봐 온 사람의 기록이 보다 진실성이 있어 보여서다.

이러다 보니 자신의 글을 감히 쓴다는 점에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번에도 시작도 못하고 있다면 영구히 불가능하리라. 일단 용기를 내어 이해 연말부터 시작해서 몇 년이라도 걸려 써 가며 70대에 이르게 되면 천천히 교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저 인도 M.K.간디의 「자서전」의 한 구절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 글 중에 조금이라도 내 자랑을 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나의 진리 탐구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고, <중략> 아무도 이 자서전 속에 여기저기 들어 있는 권고의 말을 명령하는 것으로 알지 않기를 믿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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