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으며 이야기와 문화가 있는 공간, 전통시장은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곁에 있다. 삶의 주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통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선 ‘가치’가 존재한다. 경제와 정치 등 장바구니 민심은 전통시장이 대변한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 역시 전통시장이다.

 시간이 멈춘 전통시장은 그 시대 어른들의 삶의 터전이며, 동네 꼬마들에게는 먹는 즐거움이 있던 놀이터다. 덤으로 나무 젓가락에 끼워 준 어묵, 넘쳐나게 부어 주던 팥죽은 우리의 인심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메뉴가 되기도 한다. 넉넉한 마음과 정겨운 웃음이 최고의 음식이 된다. 시장길 사이에 자리잡은 무허가 좌판 역시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감초’다.

 하지만 이런 전통시장도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우리는 전통시장을 덥고 춥고 냄새 난다고 한다. 소박한 장바구니보다 이젠 주차장이 없어 발길을 돌릴 때가 많다. 전통시장의 불은 이렇게 꺼져 가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그곳이 말이다. 정말 ‘전통시장’은 되살릴 수 없을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와 추억으로 잊혀야 하나. 아닐 게다. 전통시장을 따라가 보자. 정치가 있고, 경제가 있고, 문화가 있는 전통시장은 현대사회의 ‘비상구’이다. 구수한 사람 냄새가 나는 ‘시장 풍경’과 이들의 얘기를 지면에 담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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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乙未年) 한 해가 저무는 지난달 18일 동트기 전 인천의 한 전통시장은 한산했다. 그래도 군데군데 상가 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은 곧 있을 분주함을 예고했다. 순댓국 가게 앞에 솟구치는 하얀 수증기는 겨울철 볼 수 있는 전통시장만의 풍경이다.

겨울 문턱으로 들어가는 이맘때 등장한 난로 역시 상인들에겐 반가운 존재다. 난로 속 먹음직스러운 군감자는 훈훈한 이웃의 ‘정(情)’이다. 곧 있을 설 명절 대목을 알리듯 상인들 얼굴엔 웃음꽃이 주름 사이로 번져 있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도 전통시장은 우리 이웃의 ‘밥줄’이자 삶의 ‘희망’이다.

 

# 사람 냄새 나는 소래포구 어시장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거닐던 갯벌은 천년을 얘기해도 부족하다. 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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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타고 드나들던 어시장 소래포구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터전이다. 포구는 어느새 어시장이 됐다. 어시장과 함께 이어온 사람들은 이곳의 아들이고 손자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시장은 포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다닐 때만 해도 인천의 변두리였던 소래포구 어시장은 이제 수도권의 명물 관광지다. 매년 100만여 명이 찾는 소래포구의 해거름은 바다 냄새와 사람 냄새로 소리 없이 번져 간다.

 # 개항의 역사와 함께한 신포시장

 일본·중국·서양 등 다양한 이주민들이 만든 상권에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다. 고급 채소를 파는 ‘푸성귀전’으로 시작된 국제시장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젠 우리에게 익숙한 신포시장이다. 19세기 개항과 함께 시작된 신포시장은 현재까지 지역 상권의 중심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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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포시장 닭강정은 많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명물이기도 하다. 보통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이 ‘닭강정’은 청양고추의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도 바삭한 맛을 유지하는 물엿으로 만든 소스는 신포시장만의 특화된 상품이다. 이 같은 특화 상품은 침체된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전통시장의 미래다.

 # 젊은 예술가들 용일자유시장에서 뭉치다

 1960년대 중반. 오가는 사람이 많아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 용일자유시장이다. 인하대학교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였을 때만 해도 대학생들의 주전부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용일시장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 이후 쓰다 버린 가구 더미, 악취와 노숙자들로 몸살을 앓아 왔다. 그러나 지역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용일시장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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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입소문이 나 있다. 벌써 이곳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영화와 드라마 몇 편이 촬영됐다. 젊은 예술가와 시장 상인이 결합한 ‘아트 프로젝트’가 성공한 셈이다.

이 같은 문화 프로그램은 지역과 시장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두텁게 쌓인 용일시장 간판의 먼지가 지역사회의 관심과 배려로 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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