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학교는 ‘21세기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교육공간이자 다양한 주체들의 소통과 협력의 장(場)입니다. 우리는 ‘벗과 함께’(以友)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소망합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새로운 교육생태계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그 생태계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미래가 자라나고, 우리 모두는 ‘이우(以友)하는 사람’으로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대안학교이자 경기도교육청 지정 혁신학교인 성남시 분당구 소재 이우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광호 교장의 인사말이다.

 이우학교는 교육을 통한 사회 개혁을 꿈꾸던 뜻 있는 인사들이 7년여간의 준비 끝에 지난 2003년 9월 문을 연 학교공동체다. 행정구역상 분당구에 위치하고 있지만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과 경계지역이어서 동천동에도 이우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이우지역연대위원회’(이하 연대위)는 지난해 2월 태동한 이우학교 학부모단체 중 하나다. 다른 단체가 학내 문제에 천착한다면 연대위는 학교 안팎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를테면 작게는 동천동이라는 마을의 소소한 현안에서부터 크게는 세월호 참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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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위의 전신은 세월호 참사 직후 결성된 이우학교 학부모 비상대책위원회다. 비대위는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뒤인 2014년 5월 중순 동천동 주민단체협의회와 공동으로 ‘세월호 참사 추모와 진상 규명 촉구를 위한 동천주민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을 ‘나의 아픔, 우리의 아픔’으로 각인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후 비대위는 10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지난해 2월 연대위로 이름을 바꾼 뒤 조직 체계와 사업 방향을 조정하고 사업 내용도 확장했다. 연대위는 마을사업팀·현안팀·미디어팀 등 3개 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지원팀으로 조직돼 있다.

 마을사업팀은 봄엔 장터를, 가을엔 축제를 기획해 열고 있다. 지난해 마을사업팀의 가장 큰 성과는 10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동천동 성당 잔디마당 등지에서 개최한 동천동 머내마을축제 ‘마을in, 멈추go!’다. 머내마을축제는 연대위를 비롯해 동천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17개 단체가 동천마을 네트워크를 결성해 공동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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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위는 경기따복공동체지원센터의 ‘2015년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협동화 지원사업’ 공모에 신청해 당당히 선정됐다. 이후 ‘공유공간플랫폼 공공’, ‘동네서점 우주소년’, ‘문탁네트워크’ 등 16개 단체에 축제 공동 주최를 제안해 성사됐다. 콘크리트 문화로 인해 날로 삭막해져 가는 일상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문화로 바꾸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머내마을축제 슬로건인 ‘마을in, 멈추go!’는 축제를 주최한 동천마을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마을in’은 마을 안에서 살자는 뜻이다. 여느 위성도시처럼 베드타운화한 지 오래인 동천동을 생기 넘치는 마을로 탈바꿈시키자는 의미다. ‘멈추go!’는 바쁜 일상의 고속순환열차에서 뛰어내려 이웃을 둘러보자는 거다. 이웃의 희로애락을 나의 것으로 감정이입하고 그들과 기쁨과 분노, 슬픔과 쾌락을 함께 나누자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마을in, 멈추go’는 마을에서 여유를 갖고 이웃들을 만나면서 좋은 영화도 감상하고, 노래도 하고, 음악도 듣고, 서로 사는 모습도 지켜보면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우리의 것으로 누려 보자는 거다.

 2주 동안 진행된 제1회 머내마을축제는 ‘장터-해도두리’, ‘영화제-번짐’, ‘공연마당-울림’으로 구성했다.

 ▶장터-해도두리=해도두리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소통하고 소박한 마을경제 개념을 깨달아 가는 문화장터로 꾸몄다.

 장터화폐를 사용해 주민들이 손수 재배한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생활의 아이디어를 나누는 마당,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은 물건을 주고받는 마당, 재미있는 놀이와 문화마당 등도 마련해 그야말로 소통의 장으로 기획했다. 또 ‘궁금한 마을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중한 공간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마을 곳곳을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다.

 ▶영화제-번짐=마을축제 기간에 요일을 정해 느티나무도서관, 동네서점 우주소년, 자연드림 아이쿱 등 세 곳에서 공동체 영화를 상영했다. 친구들과 가족, 동네 사람들이 함께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을 선정해 감상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과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공연마당-울림=마을의 역사를 듣고 여러 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연 무대를 만들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즐겁고 유익하게 한자리에 어울릴 수 있는 소통과 만남의 장으로 기획했다. 공연에는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초대해 세대가 함께하는 잔치가 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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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림 앞마당은 ‘마을풍물패’의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손곡·솔개·산의초교 학생들의 밴드 공연과 ‘문탁네트워크’, ‘굿모닝 작은도서관’, ‘용인아이쿱생협’ 회원들로 구성된 우쿨렐레 어머니합주단의 연주로 꾸며졌다.

 중간마당은 마을해설사 김창희 선생이 들려주는 ‘우리 마을 옛이야기’와 ‘우리 마을 자랑 듣기’ 코너였다. 뒷마당은 ‘수지꿈학교’의 어린이 난타 공연, 이우·풍덕고의 청소년밴드 공연, 한빛중의 댄스동아리 공연, 이우학교 학부모동아리의 노래로 나누는 세상 공연 등으로 기획됐다.

 현안팀은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 크고 작은 사회 이슈에 집중한다. 유자청, 향초, 떡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으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생일상을 차려 주기도 하고, 관내 홀몸노인 등 저소득층에 김장김치를 담가 전달하기도 한다. 나아가 지진 참사가 벌어진 네팔에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일도 그들 몫이다.

 지난달 19일엔 느티나무도서관과 공동으로 역사교과서를 주제로 마을포럼을 열기도 했다. 단순히 옳다 그르다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이슈에 대해 이웃들이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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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팀은 마을 사람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주 1∼2회 마을 인문학 ‘사람이 우주다’라는 팟캐스트를 1시간가량 진행한다. 이는 깨어 있는 주민이 되기 위한 마을 인문학 프로젝트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14회를 진행하는 동안 사과장수와 김용민 PD 등이 출연하기도 했다.

 연대위 연인선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지난해 12월 25일 연 위원장은 해외 출장 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대신 타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솔직히 이우학교의 비상대책위원회를 ‘이우지역연대위원회’라는 이름의 상시조직으로 만들어 학부모회 안에 두게 되기까지 조직 구성 논의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돼 불평등과 불의가 만연한 이 사회를 바꿔 가는 데 지역 단위에서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가 있었고,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를 실천해 갈 하나의 조직이 마치 새로운 세포처럼 만들어졌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희망을 잉태한 조직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기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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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위 지원팀에서 활동 중인 최은정(49)씨는 "이미 난 길을 걸어온 게 아니라 길을 개척하면서 한 걸음씩 나왔다"며 "연대위가 추구하는 협동·사랑·연대·우정이라는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연대위의 활동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대위는 이미 세상이라는 바다에 변화라는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파문은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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