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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희 경기도의회 의원
준예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국가재정법이나 지방자치법에 따라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월 1일까지 예산안이 성립되지 않았을 때 전년도 예산에 준해 운용하는 법정경비 관련 예산이다.

 법령이나 조례에 의해 설치된 기관의 시설 유지·운영을 위한 경비와 법령 또는 조례상 지출의무의 이행을 위한 경비, 그리고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을 위한 경비를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다. 이미 집행된 예산은 당해 연도의 예산이 성립되면 그 성립된 예산에 의해 집행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어쩌면 예산을 법정기일 내에 의결해야 하는 의원들이 법령을 어기고 직무를 소홀히 한 탓에서 온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경기도민들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이와 같은 초유의 사태가 지난해 12월 31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일어났다. 광역자치단체로는 경기도의회가 사상 최초라는 불명예까지 얻게 됐다.

 이번 준예산 사태와 관련, 12월 31일 자정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도민들께 머리 조아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드린다.

 문득 정치 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딛던 날, 오랜 세월 국민과 함께한 선배의 말이 뇌리를 스쳐간다. 그는 "정치는 당리당략을 떠나 늘 초심으로 오직 국민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에 기준을 두며,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해야 하며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현장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라고 했다.

 그런데 도의원으로서 진정으로 도민을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번 사태의 원인은 누리과정 예산의 편성 여부를 놓고 도민을 볼모로 삼아 민생을 외면한 당리당략에 따른 나쁜 정치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도의원들이 도민을 생각하기 이전에 중앙당의 눈치만을 보며 민심을 저버린 극한의 선택을 한 것이다.

 당장 금년도 사업 중 도민을 위한 신규 사업에 제동이 걸리고, 유치원 19만8천여 명과 어린이집 15만6천 명 등 35여만 명의 원아에 대한 누리과정 지원사업이 중단 위기에 놓였다. 그 혼란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다시 한 번 도의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를 뼈저리게 느끼며 정겸 시인의 ‘공갈꽃’이라는 시가 생각 나 인용해 본다.

 "여의도 서편에 자리잡은 아고라 정원/ 울긋불긋한 꽃들이 정결한 척, 한바탕 피어있다/ 자유와 민주, 평화를 위한 구원의 나팔수라며/ 세상에 좋다는 소리는 모두 따 붙여가며/ 4년마다 피는 꽃, 파리지옥 같은 공·갈·꽃/ 아무 꽃나무에 물거름 주어도/ 꽃놀이패라며 흥얼거리다 꽃농사 망친 아버지/ 파랑꽃 노랑꽃 빨강꽃…/ 꽃 소리만 들어도 질린다 했다/ 아버지, 이제는 아무 나무에 물거름 주지 마세요/ 이번에는 튼실하고 향기 좋은 꽃, 제대로 찍어 보세요/ 언뜻 불어온 봄바람에 흔들리지 마세요/ 촛불에 현혹되면 안 돼요/ 아프리카 사막에 피어난 재스민 같은/ 그 꽃, 기어코 만나고 싶어요"

 4년마다 선거에 의해 뽑히는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의 장과 광역의원, 교육감,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기초의원들은 국민의 눈높이가 얼마나 높고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음 선거 때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되돌아봐야 하며, 진정한 민의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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