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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사회적 협력의 공정한 조건을 규정하는 정의관에 대해 고민하면서 "종교적·도덕적 교리들로 심각하게 분열된 시민들이 정의롭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는 이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본인의 정의관을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라고 규정하고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각자는 평등한 기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완전한 구조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며, 두 번째는 경제적 불평등은 공정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고 최소수혜자들에게 최대한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롤스는 사회를 유지시키고 안정된 성장을 위해서는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정한 기회의 평등’과 ‘최소수혜자들에 대한 보호’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공정한 기회의 평등은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동일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타고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사정과 무관하게 유사한 삶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공정한’ 기회의 평등을 의미 한다.

 공정성과 관련해 ‘카푸친 원숭이’라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두 마리의 원숭이가 서로 보이지만 분리된 우리에 있는 상태에서 사육사는 간단한 임무를 준다. 원숭이가 임무를 수행하면 사육사는 보상을 주는 방법이다.

우선 사육사는 A원숭이가 임무를 마치면 오이 한 조각을 준다. 물론 A원숭이는 받은 오이를 잘 먹는다. 이후 사육사는 B원숭이에도 똑같은 임무를 주는데, B원숭이에는 보상으로 오이가 아닌 달콤한 포도를 준다.

 사육사는 A원숭이에게 다시 임무를 맡기고 이번에도 포도가 아닌 오이를 준다. 자신도 포도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 A원숭이는 오이를 주자 이전에는 잘 먹던 오이를 던지면서 화를 내며 우리를 흔드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한다. 몇 번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보상을 받은 A원숭이는 점점 과격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카푸친 원숭이 실험을 통해서 ‘공정성’의 요구가 인위적인 가치개념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고등한 동물들에게는 본능적인 욕구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롤스의 주장과 카푸친 원숭이 실험을 함께 살펴볼 때 사회적으로 공정한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과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싸웠고, 이후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워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경제 발전과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내는 성과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청년실업, 세대갈등, 소득불균형, 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양극화, 출산율 문제 등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얼마나’ 성장해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소득이 늘어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공정하게 성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구체적인 제도와 법규를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의 독점을 엄격히 규제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벤처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출산율과 소득불균형, 세대갈등의 원인이 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기업들이 눈앞의 작은 이익을 포기해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오늘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 다른 임금과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공정한 일이다. 점차적으로 정규직과의 차별을 없애 나가는 것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수치적인 성장에 목매는 것은 이미 낡은 논리이다. 공정한 사회구조를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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