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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
올해 4월에 총선이 있다. 총선판은 경마장과 같아 말(후보)이 뛰는 대신 돈이 뛴다는 말이 있다. 과연 청렴한 정치라는 말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가? 청렴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따위를 탐하는 마음이 없음’이라고 나와 있다.

한데 정치에는 조직과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조직도 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청렴한 정치란 둥근 사각형처럼 모순된 말인지도 모른다.

특히 정치가의 대명사인 국회의원이 되려면 더욱 많은 돈이 요구된다. 현행법에도 국회의원 후보가 1억8천만 원까지 돈을 쓰도록 허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청백리들은 자기 혼자만 깨끗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힘들었다. 자신의 관직을 유지하거나 승진하기 위해서는 음서와 상납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됐다.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던 황희 정승도 조선왕조실록에는 부패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실록에는 황희가 돈을 좋아해 ‘황금 대사헌’으로 지칭하고 있고, 황희가 ‘정무를 담당한 여러 해 동안 매관매직하고 형옥을 팔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황희가 간통범 및 살인범인 여성을 자기 집에 숨겨 주는 조건으로 수년간 그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물론 황희의 일생의 대부분은 청렴했고, 그의 정무처리는 공명정대했다. 그런 기록도 조선왕조실록 여러 곳에 나온다.

 그 때문에 그는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5대를 영의정으로 섬기며 조선 창업의 기틀을 닦았다. 초기 조선의 왕업을 닦는 데 그도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황희 정도의 부패관리도 청백리에 속할 정도로 조선에서 청백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선 역사 500년 동안 공식적인 청백리는 200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물었던 것이다.

 그러면 현대의 정치가들은 어떠한가? 위에서 말했듯이 현대 정치가들은 결국 돈으로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이후락이 말했던가? 떡을 만들려면 손에 떡고물을 묻히지 않을 수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청렴한 정치를 하려면 뼈를 깎는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표를 얻으려면 돈과 조직이 필요하고 모든 정치행위에는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발로 뛰어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밖에 없다. 난 경기도청에 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다.

 처음에는 그가 왜 현장정치에 그렇게 몰두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야 청렴한 정치를 하려면 현장에 나가 유권자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쳇말로 돈 대신 몸으로 떼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김문수 지사가 주말이면 골프를 치러 나가는 다른 정치인과는 달리 택시를 몰고 나가는 것을 대단하다고 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는 청렴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택했던 것이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지역주민과 일대일로 만나는 것은 돈이 들지 않는 정치행위다.

 마찬가지로 시장을 다니고, 현장에 나가 민원을 들으며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도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조직을 관리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결국 김문수 지사는 청렴을 유지하기 위해 돈 대신 몸으로, 마치 발에 선풍기를 단 것처럼 현장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국회의원 3선에 경기도지사 재선을 한 그에게 남은 재산이란 20년 된 66㎡짜리 낡은 아파트 한 채뿐이었다. 이런 정치인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에 없다.

 그는 재직 시 경기도청 곳곳에 ‘부패즉사 청렴영생(腐敗卽死 淸廉永生)’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공직자들의 청렴을 강조했고, 감사원에서 감사관을 초빙해 공직자의 기강을 엄정하게 감사했다. 그 결과 지자체 최하위 수준이었던 경기도의 청렴도를 단숨에 1위로 만들어 놓았다.

그의 정치철학인 ‘통일강국’, ‘선공후사’, ‘통합정치’, ‘현장정치’의 모든 뿌리는 결국 청렴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천연기념물과 같은 이런 정치인을 우리 정치인들 중에 한 명이라도 둬야 나라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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