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jpg
▲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야당의 분열이 현실화됐다. 이미 계파 간의 갈등이 정도를 넘어서 심각한 상태로 치달으면서 비주류의 이탈에 대한 많은 국민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끝내 야당에 대한 이 걱정은 노파심에 머물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에 즈음해 안철수 바람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심상치 않다. 그 기세가 이미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을 넘어섰고, 그 여파가 충청도를 거쳐 수도권으로 밀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애초에 보여 줬던 두루뭉술하고 우유부단했던 안철수 의원의 모습과 대선 이후의 그의 행태에 견줘 볼 때 현재의 양상은 예측하기 어려웠던 현상이다. 이는 결국 안철수 개인에 대한 기대보다 새 정치와 새 야당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그만큼 크고 간절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단서가 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연과 지연, 인맥에 의한 반칙과 탈법이 판을 치고, 도처에서 갑질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 여기에 불법과 불공정에 편승해 마약과 도박, 한탕주의 또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정황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정치가 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정치만큼 이념적 갈등의 늪에 빠져 국가와 국민을 외면하고 있는 나라도 없을 성싶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를 비웃고 정치인을 욕해도 정치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이 새로운 제3당의 출현이 필요한 시점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의 가장 왼쪽과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유권자들을 규합해서 제1야당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새로운 중도정치를 표방하는 안철수 신당은 성공하기 어렵다. 게다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새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분명한 자기 색깔을 내려는 조짐이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도정치는 양다리 정치가 결코 아니다. 이념적 성향이 전혀 다른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만족시키겠다는 입장은 대국민 사기일 뿐만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회색정치에 불과하다.

중도와 중간은 다르다. 공간적으로 인천과 서울의 가운데가 부천쯤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부천을 중도 지역으로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 친미와 종북 사이에서 잿빛을 띠고 있는 존재를 중도라고 할 수는 없다. 경쟁을 긍정하고 성장을 주장하는 쪽은 보수이고, 평등을 옹호하고 분배를 지향하는 쪽은 진보라면 그 중간에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 안철수식 정치가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중도는 미국 전체이다. 특히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서 이 양당은 늘 미국 전체를 우선시한다.

 따라서 중도는 미국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공화당도 포용하고 사정에 따라 민주당도 수용한다. 중도 속에 여당도 있고 야당도 있으며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고 워싱턴포스트지도 있고 뉴욕타임즈도 있는 곳이 미국이다. 이에 따르면 서울과 부산의 중도는 남한 전체이고, 남한과 북한의 중도는 한반도 전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는 안보와 국익 앞에서조차도 대립과 충돌과 삿대질이 난무한다. 이번 19대 국회는 유독 더 저질스럽고 꼴불견인 4류 정치의 끝판을 국민들에게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고질적인 부조리와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이 자리한다. 안철수 현상은 여당의 독선과 야당이 무능 사이에서 균형을 상실한 한국 정치의 틈 사이에서 배태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중도 세력은 지난번 대선에서도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식 정치를 원했고, 이번 총선에서도 역시 안철수식 정치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국가를 만드는 데 가장 최선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온전하고 진정한 중도정치의 실현은 한국 정치의 고착적 양자택일의 구도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양 극단의 중간이 중도가 아니라, 중도 안에 양 극단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리 새 정치의 미래가 조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