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세상을 어지럽힌 자들 중에는 배웠다는 선비도 있고 무지렁이 도둑들도 있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예의가 없다는 점이다.

전국시대 위나라의 문후가 어느날 여러 신하들을 불러 모아놓고 연회를 열었다. 주흥이 무르익자 문후는 신하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그냥 술만 마시니 재미가 없구려. 우리 내기를 해서 지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기로 합시다. 작은 잔은 싱거우니까 커다란 대접에 따르는 것이 어떻겠소?” 그래서 벌어진 벌주마시기에 공교롭게도 제일 먼저 걸린 사람이 바로 문후였다. 신하들은 차마 왕에게 벌주를 마시라고 할 용기가 없어서 다를 머뭇거렸다. 그런데 가장 말석에 앉아 있던 불인이란 신하가 문후에게 나아가 커다란 잔을 내밀며 말했다. “자, 전하. 약속을 지키십시오.” 그러자 문후는 차마 마시기가 두려워 외면해 버렸다. 하지만 불인은 물러나지 않고 술잔을 권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고관대작들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얼굴을 붉혔다. 그 때 한 신하가 불인을 꾸짖었다.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전하께서는 이미 거나하게 마셨다. 어찌 신하로서 벌주를 강권할 수 있는가?” 그 소리에 불인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가던 수레의 빠진 바퀴자국은 뒤따라가던 수레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법을 만들자마자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전하, 마땅히 받아야 할 벌주라면 받으십시오. 그것이 나라의 예법을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이 말을 들은 문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그대의 말이 옳다. 내가 잘못했다.” 그리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큰 잔을 마셨다. 요즘 한 인물이 우리 정치권을 농단하고 있지나 않는지 염려스럽다. 전력이 깨끗하지 못한 자가 `병풍'의 진실을 밝히는 증인 역할부터가 아리숭하더니 이제는 그가 검찰에 제출한 녹음테이프가 엉터리 조작 테이프로 밝혀졌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이 두달이 되도록 한 사람에 의해 놀아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예법이 서야 민심이 넉넉하다.
(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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