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전오.jpg
▲ 권전오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추운 겨울이 됐다. 대지는 얼어붙고 먹거리들은 자취를 감춘다. 수천 년 야생에 길들여 왔다고 하지만 매년 겨울은 우리에게 시련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노약자와 올해 태어난 어린것들 중 많은 수가 이 겨울의 고난을 넘지 못하고 자연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고귀한 자연과학자의 말에 따른 자연선택이라지만 우리에게는 매년 가족을 잃는 아픔의 시간이다.

따뜻한 아파트에서 겨울을 지내는 인간들이 과연 얼어붙은 대지 속, 눈 덮이고 바람 부는 혹독한 자연의 깊은 밤을 알기는 할까?

 두뇌가 발달한 인간은 무리를 지어 도시와 마을을 만들고 우리 멧돼지를 비롯한 동물들의 삶터를 산속으로 몰아버렸다.

 넓고 기름진 평야는 밭이나 논이 됐고, 도시의 공장과 주거지가 돼 인간의 영역이 됐다. 그에 반해 우리는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내몰렸다. 혹자는 동물들이 산을 좋아해서 산에 산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높은 산을 오르내리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경사진 산비탈을 걷는 것이 우리 동물들이 좋아서 선택한 것일까?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구역이 인디언들이 살기 좋은 원래의 삶터가 아니라 백인들이 살기 어렵고 버려진 외곽 변두리에 만들어지고 그곳에 살도록 강제됐듯이 우리 동물들의 삶터 역시 넓고 평편하고 기름진 평야에서 쫓겨나 험준한 산으로 제한된 것이다.

깊은 산속이 먹을 것이 많고 비옥할까? 드넓은 논과 밭이 더 많은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을지는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이 차지해 버린 넓은 땅, 동물들에게 허락되지 못하는 넓은 땅, 추운 겨울 먹거리가 없어서이거나 나이 들고 힘들어서 또는 방향감을 잃어서 내려온 시골마을이나 도시에서 우리 동물들은 괴물 취급을 받게 된다.

 평화로운 마을에 쳐들어온 이방인, 적으로 간주된 우리 동물들은 무시무시한 총으로 죽여 마땅한 대상이 되고 만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을에 들어와 어린아이와 여인들, 노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배가 고파서나 길을 잃어서 도시의 한쪽에 나타난 것이 그렇게 죽음으로 죄를 물어야 할 일인가?

 도시에 나타난 멧돼지, 고라니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죄를 물어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보기 이전에 인간의 영역 밖의 공간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얼마나 많이 침범해 그들의 땅을 모두 빼앗아 버렸는지! 한번이라도 자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땅은 지번이 있고 토지소유자가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땅이 인간만의 땅이라는 뜻인가? 인간이 지번을 부여한 모든 땅은 인간만을 위해 개발해야만 하는가? 인간의 영토 확장 욕망은 언제쯤 진정될 것인가? 언제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이 올까? 인간도 태초에는 자연물의 하나였는데 언제까지 그 모태를 부정할 것인가?

 여성들의 선거권이 근대 이후에 투쟁에 의해 부여됐듯이 동물들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된다면 지금의 사회지도층들은 얼마나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우리 동물들과의 공존이 동물만을 위한 것을 넘어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미래산업이 된다는 것이 최근 회자되고 있는 생태계 서비스다.

 지금 와서 넓고 평편한 땅 모두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인간 욕망에 의한 영역 확장을 멈추고 자연물들에 대한 배려와 공존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흰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면 자연의 땅 어딘가는 가녀린 자연의 목숨들이 자연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생존본능으로 눈보라처럼 휘몰아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