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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엊그제 인천 인물 여섯 분의 액자 제작을 주문했다. 내가 일하는 방에 걸기 위해서였다. 방에 걸어 두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눈길을 주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방향도 그리 옮겨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새삼 인천을 발견하게 되고, 느끼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자랑스러워 하게 될 것이다.

 액자의 주인공들은 제2공화국 내각수반을 지낸 장면(張勉)박사, 한국 고미술사학의 태두 고유섭(高裕燮)선생, 맹인 점자 창안자 박두성(朴斗星)선생,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 함정이라고 할 수 있는 양무호의 신순성(愼順晟)함장, 인천 성공회 성당 소속으로 인술과 영어교육을 펼쳐 한국인에게서 대인(大人)의 존칭을 받았던 벽안의 의사 랜디스(Landis)박사, 그리고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말소해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 이길용(李吉用)선생이다.

 이분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기려야 할 분들이 우리 인천에 많지만, 이 여섯 분만을 택해 먼저 거는 이유는 별다르지 않다. 그동안 틈틈이 인천 역사 공부를 해 오면서 이분들을 가슴에 두게 됐던 이유와 함께, 한꺼번에 많은 분들의 사진을 걸면 오히려 보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기억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 고색이 창연한 낡은 돌집 문과대학 복도 벽에 걸린 정인보(鄭寅普)선생, 최현배(崔鉉培)선생 같은 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감동과 흥분으로 울렁거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런 분들이 기틀을 다지고 수천 후학들에게 학문과 인간 정신을 가르치시던 이 대학에 들어왔구나! 고등학교 시절 어쩌다 선생님들에게서 말로만 얻어 들었던 위대한 분들의 사진을 두 눈으로 보면서 느낀 자부심과 긍지는 자못 컸었다. 비록 공부는 학부까지로 끝났지만 그때 그 느낌만은 다소 희미한 대로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예향으로 자부심이 강한 남쪽 어느 지역에는 찻집에도 밥집에도 그 지역 예술인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걸어만 놓은 것이 아니라 찻집·밥집 주인들의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 지역 예인에 대해 속속들이 드러내 설명하는 해박한 지식과 존경에 자못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자기 지역과 지역 인물에 대한 높은 자긍심,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이따금 회의 때문에 시청 2층 대회의실에 가게 되면 벽에 걸린 역대 시장의 사진을 꼭 보게 된다. 굳이 그분들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사진들을 보면서 ‘저렇게 우리 인천이 흘러 왔구나’하는 감회를 먼저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 이름만 들었던 시장에서부터 커서 실제로 겪었던 시장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여러분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이 사진들이 인천의 역사를 증명하는 동시에 또 앞으로 나갈 미래도 생각하게 하는 한 상징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학교나 단체 혹은 회관 같은 데 관련된 인물의 동상을 세우고 사진 등을 액자에 넣어 걸어 두고 하는 행위는 모두 그런 상징적 효과 때문일 것이다.

 사진을 걸어 두면 거기 인물들과 우리가 같은 시대에 함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심리적 효과가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진 속 인물들과의 무언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지게도 한다.

 또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는 정신적 유대 공간으로 승화시켜 준다. 모르긴 해도 시민들의 지역사랑 정신은 이런 과정 속에서 짙게 밸 것이다.

 해서 인천 인물 사진 걸기 운동을 제안해 본다. 오늘 우리 인천광역시 시정 철학의 근본이라고 할 ‘인천가치 재창조’의 한 방편으로, 소박하지만 인천 인물 사진을 거는 이 운동이 ‘우리는 인천’ 슬로건에도 부합하리라는 생각이다.

시민 대중이 드나드는 식당 같은 곳에, 회관에, 단체에 인천 인물의 사진을 걸어 놓아 시민 모두에게 친숙하게 하고 대화하게 하는 것이다.

 여섯 인물의 사진 외에도 또 다른 인천 인물들의 사진을 옆의 다른 직원들이 일하는 곳에도 걸 계획이다. 그리고 이 일이 인근으로도 번져 나가게 할 작정이다. 남쪽 어느 곳이 예향의 자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우리 선대 사진 걸기를 통해 인천사랑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으로 큰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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