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배국환/ 나눔사/ 239쪽/ 1만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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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는 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을 감상시·에세이·수채화·사진 등으로 표현한 책이다. 배국환 전 인천시 경제부시장은 28개 역사문화유산을 하나하나 답사한 끝에 얻은 깨달음을 감성적 ·함축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둥그렇게 이그러진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눈부신 하양도 아닌 촉촉함에 착 달라붙는/ 세상 품은 여인의 배처럼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그런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네."

배 전 부시장이 묘사한 달항아리의 모습이다. 경제관료 출신답지 않은 감성이 한껏 녹아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22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30년 이상을 기획재정부 등에서 관료생활을 했고 최근까지 인천시 경제부시장으로 활동했다. 일반적으로 보통 경제관료 출신이 문화와 문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듯 우리 역사문화유산에 대해 갖고 있는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저자는 평소 「우리문화유산답사기」를 비롯해 역사와 불교, 미술사 등의 서적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더구나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면 폐사지, 국보건축물, 스토리가 있는 유적지 등을 찾아가는 열정을 보인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느낌을 고스란히 시로 옮긴다.

"8월의 병산은 감히 여유로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병산서원 중)

"가진 자를 따르는 세속(世俗)의 법칙(法則)을 거부하고 싶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빌려."(세한도 중)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걸 알았을 땐 세상을 거의 산 다음이라네."(무위사 맞배지붕 중)

"봉건의 고집과 자폐가 그들을 죽였다는 걸 안다. 우리는…."(광성보 중)

그의 문화와 문학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저자는 수많은 학원지에 글을 공모했고 당선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특히 45년 전 월간지 「학원(1970년 9월호)」이라는 중고생 잡지에 출품한 저자의 시 한 편이 당선됐는데, 이는 고은 시인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진다. 바로 배 전 부시장의 시를 고은 시인이 심사했던 것이다.

당시 고은 시인은 심사평에서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술 한 잔 사 주고 싶다"고 말했고, 시간이 흘러 2014년 그 약속이 이뤄졌다.

장석주 시인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장 시인은 저자의 중학교 동창이다. 청운중에 다니던 시절 두 친구는 학원지에 글을 발표하며 문학활동에 심취해 있었다. 그 뒤 한 사람은 문인의 길을, 다른 한 사람은 관료로 살았다.

배 전 부시장은 "독자들에게 역사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보여 주고 싶었다"며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직간
율곡 이이 / 홍익출판사 / 352쪽 / 1만5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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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간」에 실린 율곡 이이의 정책제안서 ‘동호문답’과 상소문 ‘만언봉사’는 목숨을 걸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의 글 중에서도 가장 깊은 성찰이 담긴 ‘정치개혁론’의 핵심이다.

조선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율곡의 어조는 단호하고 직설적이다.

"지금 나라의 형세는 기절한 사람이 겨우 소생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중략)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고는 앉아서 자연 치유되기를 기다립니다. (중략)이렇게 되면 나라가 마치 큰 병을 치른 후에는 감기에 쉽게 걸리는 것처럼 앞으로 치료하지 못할 중병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라는 상소문에서는 임금을 꾸짖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위대한 성리학자 이율곡의 대표적인 직간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정치 개혁에 시기를 탓하지 말라. 좋은 정치는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백성들의 윤리도덕은 최소한의 생계가 해결돼야 비로소 구축된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올곧은 신하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인재 등용은 최대한 신중하되 선발한 뒤에는 전폭적으로 신뢰하라."

다가올 민주주의   
고쿠분 고이치로 / 오래된생각 / 256쪽 / 1만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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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민주주의」는 ‘행동파 철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다카사키경제대학 고쿠분 고이치로 교수가 마을의 작은 정치 운동에 우연히 나서게 되면서 근대 정치철학의 맹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저자는 도로 건설에 주민의 의지를 반영시킬지 아닐지를 물어보기 위해 2013년 5월 26일 진행된 도쿄도 고다이라시의 주민투표에 주목한다. 주민들이 반대를 주장했던 투표는 투표율 35.17%로 무효 처리되고 개표도 이뤄지지 않았다.

주민투표의 결과는 영구히 알 수 없게 됐고,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행정이 일단 정책을 결정하면 주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주권자를 무시하는 정책이 행정에 의해 결정되고 있기에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입법권만이 아닌 행정권에도 국민이 공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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