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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구 사회2부
다급한 목소리로 부정선거를 제보하겠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이들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파주시내 한적한 지하다방에서 만났다. 전화를 했던 김모(57)씨는 이모(28)씨를 제보자이자 친구 아들이라며 대동하고 나왔다.

이 씨는 새누리당 류화선 캠프 관계자가 북콘서트에 오면 1인당 5천 원을 주겠다고 해 친구 4명을 데리고 갔다고 했다. 이들은 "캠프 관계자는 ‘문산○○○’이란 ID를 쓰고 있으며, 실제로 행사 당일 2만5천 원을 자신의 통장으로 입금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주고받은 SNS 내용과 통장 입금액이 찍힌 통장 사본까지 건넸다. 이날 류화선 후보를 파주선관위에 고발한 직후였다.

선거철인 점을 감안해 이 씨에게 혹시 다른 선거캠프 관계자인지 물었다. 선거와는 무관하고 대학원 졸업 후 잠시 쉬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로서 대박 느낌이랄까, 아니면 촉이랄까.

이들의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 중 같은 지역의 다른 예비후보가 보낸 보도자료 한 건을 받았다. 자료 하단에는 "더 자세한 사항은 이○○에게 연락을 달라"며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까지 남겨 놓았다. 방금 만났던 제보자와 이름, 전화번호가 같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혹시, 방금 만나셨던 분인가요?" "네…." 선량한 부정선거 제보가 아닌, 기획된 정치공작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들이 알려 준 문산○○○이란 ID 또한 류화선 캠프 관계자가 아니라 한 심부름센터 ID였다. 이에 대해 캐묻자 이 씨는 "상대 캠프에서 일하는 것은 맞지만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 씨도 "이 씨가 선거캠프 직원인 줄은 몰랐다"며 발뺌했다.

사건 후 이 씨가 속한 선거캠프에서는 "소신 있는 젊은이가 북콘서트장에서 일어난 범법행위를 선관위에 고발한 것을 범법자로 내몰고 있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류화선 캠프는 시급도 안 되는 5천 원을 받기 위해 상대 캠프 행사에 참여했다는 점과 현금이 아닌 예금계좌로 돈을 받아 흔적을 남긴 점 등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되받아쳤다. 또 "아무리 선거에서 불리해도 상대 캠프를 음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것은 참 나쁜 짓"이라고 반박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운동을 펼칠 때 지역주민의 선택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시내 건물에 걸린 선거현수막 앞을 지나가려니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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