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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미연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
얼마 전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새롭게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과 ‘내부자들’은 기득권층의 부정부패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꼴이다.

 ‘내부자들’은 정치·언론·재벌·검찰 등 권력 내부 집단의 검은 결탁을 폭로하기 위해 이들에게 이용당하다 폐기된 정치깡패와 비주류 검사의 ‘한편 먹기’ 작전을 속도감 있는 전개와 관람객의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 주는 ‘사이다 전개’로 공감을 얻었다.

 ‘베테랑’ 역시 재벌 3세의 비리를 쫓는 광역수사대의 활약상을 그리면서 탱크로리 기사 폭행 후 ‘맷값’ 2천만 원을 건넨 실화를 담아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또 주인공 경찰의 입을 빌려 세상에 나온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대사는 유명 어록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돈은 없지만 가오가 있어야 하는 직업군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공직자들이 영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에 나왔던 검찰이나 경찰 역시 여기에 포함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사회 도덕성의 최후 보루로 남아 있어야 할 집단이 바로 공직자들이기에 일반 국민들이 더욱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공직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음에 나는 절대 공감한다.

 한데 최근 용인시 모 구청장이 공금 유용 의혹으로 감찰조사를 받았고, 이 때문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는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위공직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시 한번 곱씹는 계기가 됐다.

 공직사회는 직급이 존재하고 업무영역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는 점에서 상명하달식의 관료제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때문에 상급자의 지시가 부당하고 위법한 것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해서 공직자들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더더욱 요구되는 것도 현실이다.

위법하고 부당한 지시는 당당히 거부할 줄 아는 결단있는 공직자가 필요한 것이다. 충성의 대상은 국가이지 결코 개인이 될 수도, 돼서도 안 된다.

 이 같은 본보기는 근현대사를 통틀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박은의 예를 들어보자. 태조 6년 경주군수 유량이 왜인들과 결탁해 나라를 배반하려 했다는 보고를 받고 조정에서는 유량과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있는 박은을 담당자로 지정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유량의 무죄를 알게 된 박은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을 곳으로 빠뜨리는 짓은 안 하겠다"며 유죄로 작성된 서류 결재를 결연히 거부했다. 그 결과 유량은 목숨을 구했지만 정작 박은 자신은 피해를 입게 됐다. 미운 놈을 합법적으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시 현실을 돌아보자. 법적으로도 공직사회에서 상급자의 부당 명령에 대한 처리 방침을 마련해 놓고 있다.

 ‘부패방지법’에 따라 마련된 ‘공무원행동강령’에 따르면 공무원은 상급자가 공정한 직무 수행을 현저하게 해치는 지시를 하면 이것이 불가한 이유를 설명하고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 동일한 부당 지시를 반복해서 내린 경우 ‘행동강령책임관’과 상담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공직자들이 공직자로서 신념을 지키며 일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결단과 법적·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올바른 공직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다수의 공직자들이 ‘관행’(때로는 자신의 위법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로 이 단어를 갖다 붙이기도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부정한 권력에 굴복하면 그 조직에 새롭게 진입하는 새내기들 역시 암묵적 동조를 통해 비생산적인 조직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용인시는 인사비리라는 과거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승진에 목숨 건 공직문화가 아니라 업무 능력으로 평가받는 청정 인사시스템이 작동되는 곳이 용인시 공직사회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조직의 사닥다리에서 단계별로 자리잡고 있는 ‘윗사람’이 아니라 ‘시민’을 바라보는 공직자가 되시길 기원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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