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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지난해 11월 16일 인천광역시 조례 제5587호로 ‘인천광역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몇 년 전부터 인천지역에 산재한 근대 건축자산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례 제정을 주장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어 안타깝던 터라 반갑기 그지없다.

물론 이 조례는 인천시만의 특별한 일도 아니고 필자의 주장으로 제정된 것도 아니다. 2015년 6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건축자산법)에 따라 만들어진 조례이다.

 건축자산법은 한옥 등 건축자산을 보전·활용하고 미래의 건축자산을 만들어 국가의 건축문화를 진흥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제정된 법률로, 조문 곳곳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인천시 조례도 제1조(목적)에서 ‘이 조례는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혀 조례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인천에 위치한 건축자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다른 지역보다 빨리 근대건축물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인천은 1982년 옛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과 옛 인천우체국을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이래 여러 개의 근대건축물을 문화재로 지정해 왔다. 그 결과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건축물 수는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근대건축물 활용에 있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건축물에 대한 인천 지역사회의 인식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활용 방법도 다양하지 못하다.

근대건축물 활용의 대표 사례로 손꼽히는 인천아트플랫폼의 경우 사업 시행으로 오히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근대건축물이 철거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됐지만, 개선을 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초래된 데에는 기초조사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건축자산법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작년 말에 발표한 제1차 건축자산진흥기본계획을 살펴보면 대구 공구박물관이 모범 사례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볼거리가 많은 박물관이 아님에도 이 박물관이 주목받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전시물만이 아니라 삶의 모습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만든 사람들은 공구상가가 있던 대구 북성로에서 일생을 보낸 지역주민의 경험과 생활상을 채록하는 등 건축물을 둘러싸고 전개된 생활문화 전반을 입체적 접근해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 최근에는 공구점에서 일했던 상인과 기술자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과 공구 제작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근대건축물 활용을 통해 인천의 가치를 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가시적 성과에 눈을 돌리기보다 탄탄한 밑돌을 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인천시는 건축자산에 대한 제대로 된 전수조사부터 착수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수조사란 건축자산을 목록화하고 실태를 파악하는 물리적 접근을 넘어 대구 공구박물관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건축물에 담긴 무형의 콘텐츠인 삶의 역사와 문화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입체적 조사를 말한다.

 건축물에 담긴 삶의 역사는 향후 건축자산의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인 동시에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민 참여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천에서 진행된 근대건축물 활용 방법은 건물을 보수해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하지만 그 건축물에 쌓인 생활문화를 보지 못한 채 전시물에 만족하고 돌아선다.

 근대건축물 활용은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보수하는 리모델링 사업이 아니다. 근대건축물이 또 하나의 새로운 건축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건축물에 적층된 삶이 담겨 있어야 한다.

대구 북성로의 오늘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15년 전 인천을 부러워했지만 기본을 지켜 오늘과 같은 성과를 만들어 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성공적인 인천의 가치 재창조를 위해 기본과 원칙을 새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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