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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서울대 학생들이 2014∼2015년 상반기에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봤다는 책이 고대 그리스의 「에우리피데스 비극」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 3대 작가인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도 2년 연속 10위권 이내에 들어 있다. 잘 읽지 않으려고 하는 고전이 연속 순위권에 있다니 흥미롭다.

고전 작품이 유익하고 재미있어 빌린 경우도 있겠지만, 서울대에서는 2012년부터 고전 읽기를 강화했고 ‘삶과 인문학’, ‘고전으로 읽는 인문학’ 같은 강좌가 인문대학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 비극(tragedy-tragoidia)은 슬픈 내용이라기보다는 끔찍하고 잔인한 내용에 더 가깝다.

비극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염소(tragos)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용이 꼭 슬픈 것과는 무관해 보인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도 오이디푸스의 출생 비밀을 밝히면서 끔찍하게 오이디푸스가 파멸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아들을 낳으면 그 녀석이 자신을 죽일 거라는 신탁을 받은 테베왕 라이오스는 갓 태어난 아들의 발을 꼬챙이로 찔러 시타에론 산에 버리도록 한다.

 이 아이를 한 목자(牧者)가 발견해 마침 자식이 없던 코린트 왕의 아들로 입양시킨다. ‘부은 발’이라는 의미를 가진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내용처럼 코린트를 떠나 결국 아버지 테베왕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살아오게 된 삶의 역정을 밝힌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브로치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스스로 국외로 추방생활을 떠난다.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자식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할 필요가 있을까?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는 정부(情夫)와 작당해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을 쳐 죽인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등장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서는 변심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잔혹하게 자식을 죽이는 어머니 메데이아가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이 격정적이고 무섭고 거칠고 극단적이고 악랄하기까지하다.

밝고 즐겁게 살기에도 짧은 세상에 이렇게 끔찍하고 심각하고 우울하기만 한 그리스 비극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에서인지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이런 비극 작품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요즘 말로 모방범죄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비극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시인 추방론’이다.

그러나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달랐다. 「오이디푸스 왕」이 탁월한 비극 작품이라고 그의 저서 「시학」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割愛)하면서 칭찬한다.

그에 따르면 관객은 주인공에게 동화돼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되고, 연극을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감정이 정화(淨化)된다는 것이다. 즉 비극을 보고 나면 사람들은 마음이 후련하게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오이디푸스처럼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어간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에게 더 이상 출생의 비밀을 밝히지 말라고 만류하기도 하지만 집요하게 그는 비밀을 밝혀 스스로 파멸로 빠져든다.

 오이디푸스처럼 비극의 주인공들은 전부인 하나를 위해서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 준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사랑에 목숨을 걸고, 하나인 그 사랑을 위해 전부인 삶을 포기하는 몰락의 에티카를 보여 준다.

 비극 작품은 처절하게 몰락해 가는 삶을 극단까지 보여 줌으로써 삶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는 데 공헌한다. 독자가 그런 삶을 굳이 경험할 필요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작품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플라톤의 입장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 아직도 충돌하고 있다.

필자처럼 귀가 얇은 사람이라면 비극을 읽을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먼저 꼼꼼한 독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왕」을 읽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의 핵심 이론을 창안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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