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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근 인천대 교수
금융은 반드시 강대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강대국에게 기축통화를 근거로 글로벌 종합금융센터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면, 강소국에게는 틈새형 금융센터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런 이유로 세계금융지도에는 메이저리그 외에도 스위스·아일랜드·룩셈부르크·네덜란드·벨기에·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두바이 등이 참여하는 마이너리그가 존재한다.

 작은 나라들이 금융을 키울 목적으로 자주 구사하는 전략이 역외금융(offshore finance)이다. 자본이 국내 금융시장을 관통하지 않은 채 外-外를 연결한다는 뜻의 역외금융은 이미 현대 금융의 메커니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부품이다.

 세계의 주요 은행들은 적어도 10여 개의 역외금융센터와 거래관계를 맺고 있고, 다국적기업이 전개하는 해외직접투자의 약 30%가 역외기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역외금융을 활용한 개인과 기업의 공격적인 절세행위로 인해 세수 잠식 현상이 만연하자 이를 규제하려는 국제적인 논의가 활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조세규범을 강제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역외금융을 무력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3천여 개의 양국 간 조세협약과 각국별로 국익을 의도해 설계한 천차만별의 세법체계가 혼재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역외금융의 기제를 일부 활용해 금융의 선진화를 기한다는 역발상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금융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형화·겸업화를 서둘러 왔다. 제조업 규모에 걸맞게 금융 대자본을 키워야 한다는 담론이 힘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기관의 자산 운용은 국내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국제적 전개가 매우 부진하다.

 이에 특단의 대책으로서 국내의 일부 지역을 국제적인 자본의 이동이 활발한 곳으로 만들어 이곳에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국제 금융의 최전선을 경험하고 노하우를 쌓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개발연대 초기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을 지정해 제조업의 국제화를 도모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침 송도국제도시에는 기후문제의 금융적 해결을 목표로 국제사회가 합의해 만든 녹색기후기금(GCF)의 사무국이 입주해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글로벌 기후금융의 극대화라는 대의명분을 살려 ‘목적형’ 역외금융센터를 조성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를 살리려면 이념논쟁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의 무장과 치밀한 제도설계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필자의 소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적인 자본 이동은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대외 개방을 통해 이뤄 낸 중국의 경제 발전이 웅변하듯이 글로벌리제이션의 혜택을 전 세계로 확산시킨다.

 둘째, 국제적인 자본 이동을 매개하는 데 있어서 역외금융은 핵심 부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역외기지는 카리브해, 대서양, 태평양, 지중해 상의 작은 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 각국에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셋째, 지난 70년간 미국의 달러가 패권통화로써 세계의 금융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50여 개의 역외기지가 배후에서 활약했다. 때문에 한국은 중국 위안화의 비상에 대비할 수 있는 채비를 서둘러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넷째, 따라서 한국은 세계 각지에 산재한 역외기지에 장착돼 있는 법과 제도를 공부함으로써 기후금융과 위안화금융에 맞는 역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식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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