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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문 변호사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롤드 핀토는 녹음으로 보낸 기념 강연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영국의 협력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제법 개념을 완전히 경멸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강도짓이자 노골적인 국가 테러행위"라고 규정하고, 부시와 블레어를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넘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연설 모두에서 문학과 정치의 차이점을 거론하며 "문학에서 한 사건은 반드시 진실이거나 거짓이 아닐 수 있다. 또 그것은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정치에서의 진실은 단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면서 "정치인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고, 권력과 권력의 유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의지와 확신에 차 있었다. 개성공단 임금이 북한 정권의 핵 개발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박 대통령의 진실 때문이었다.

그 진실에 대한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개성공단 자금이 핵 개발에 사용된 것은 진실일까 아닐까? 진실이라면 그동안 이 진실을 아는 정권에서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 침묵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이 아니라면 왜 그토록 강한 어조로 김정은정권의 ‘체제 붕괴’를 언급했을까?

 대화와 압박을 통한 대북정책이 아니라 압박을 통한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겠다고 할만큼 그 사실은 진실하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김정은 체제에 변화를 주겠다고 할 만큼 그 사실은 진실이어야 한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평화를 갈망하는 국민들 모두 이 대목에서는 공감할 것이다.

 박 대통령만의 진실의 토대 위에서 한반도 상황은 급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폐쇄 결정도 나왔다. 더 나아가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들고 나왔다.

 중국이 자국 안보이익에 해롭다는 이유로 한반도 내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위에서 본 개성공단 임금의 유용이라는 ‘팩트’가 한반도 상황을 급변하게 하고 있다. 대통령의 2·16 연설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연대도 계속 중시해 나가겠다고 한마디했지만 이는 립서비스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대통령 혼자만 위에서 본 ‘팩트’를 단독 점유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나 야당에게도 공유하게 해야 한다.

김종인 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연설 전 그 과정을 국민들에게 ‘설명’해 주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근거 없는 확신만으로 대북정책을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 바로 야당과 국민들에게 그 확신이 왜 생겨났는지를 설명하고 동시에 근거를 제공해 줘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 주면 안보문제는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이기에 박 대통령의 의지에 얼마든지 공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근거를 설명하지도 않았고, 근거도 없었다. 대통령의 확신만이 있었을 뿐이다. 정치에서의 진실은 단 하나뿐이다. 개성공단 임금이 유용돼 핵 개발 자금에 사용됐거나 아니면 핵 개발자금으로 사용되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개성공단 임금 유용이 진실이라고 해도 북핵 문제의 주도적이고 선제적인 해결을 대통령 단독으로 독점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겐 힘이 없다. 전시작전권 통제 문제는 아직도 미국이 갖고 있고, 휴전협정의 당사자도 미국이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압박카드는 없다. 단순하게 북한을 압박한 것만으로는 북한의 김정은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미국이 행했던 북한 비자금 동결과 같은 카드도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의 영역 밖에 있다. 박 대통령만의 단독 드리블로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가져올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중국 시진핑의 대북 억제력이 아직도 살아있다. 중국과의 연대는 그래서 중요하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이다. 중국의 동의 없는 북한 압박외교는 사실상 공허한 것이다.

특히 사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 한국정부의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이 얽혀 있는 사안이다. 행여 WTO체제 아래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을 제제하지는 못하더라도 유커의 한국관광 제한 조치 등의 경제적 제재는 취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결정을 하면서 중국과의 연대를 외치고는 있지만, 북한 체제의 붕괴는 박 대통령만의 생각으로 이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안보도 안보이지만, 경제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안보이익과 중국의 안보이익이 어떻게 상충되는지 검토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는 문제였다.

한국의 안보 문제는 한미동맹 관계만을 가지고 해결하기 힘든 구조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의 대북 억제력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면 이는 경솔한 결정이다.

개성공단 임금의 유용이 진실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행위로써 초법적인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다.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 없는 개성공단의 폐쇄 결정이다.

경제적 손실이 큼은 말할 것도 없다. 사드 배치에 따른 나라경제의 손실이 또 어느 정도인지는 박 대통령도 잘 알 터이다.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은 물 건너갔다. 강경한 대결이 과연 한반도 안정을 이룰 수 있을까? 국민 앞에 대통령은 먼저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 근거를 밝혀야 한다. 진실이 먼저다. 4월 총선을 앞둔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보수세력의 결집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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