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새 길을 찾듯이 서예가들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을 찾기 위해 길을 걷다가 한 번쯤 다시 하늘을 봐야 합니다."

대중에게 낯선 서예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한글 서체 개발, 한글의 아름다움을 입힌 문화상품 보급에 열중인 박혁남(57)서예가의 말이다.

그는 화선지에 쓰여진 서예 작품이 액자 안에 갇혀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생활소품 등에 아름다운 한글 서예를 새긴 문화상품을 개발하는 ‘깨어 있는 서예 글씨 연구가’로 유명하다.

"한글문화상품연구소를 설립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지요. 하지만 이 길을 가며 어렵거나 힘들다고 느껴 본 적은 별로 없어요. 좋아해 시작한 만큼 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박혁남 서예가는 최근 한글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조명하는 캘리그래피와 전각에 푹 빠져 있다.

"돌에 품위와 격조가 있는 한글을 새기는 작업 중이랍니다. 4개월의 목표를 정해 500여 개의 작품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목표를 세워 놓고 활동했을 때 후회가 없다는 게 35년 예술인생에서 배운 저의 원칙입니다. 예술작품은 목숨을 걸 때 탄생되는 법이죠."

대충대충이 아니라 진짜 목숨을 걸 듯이 예술에 빠져야 한다는 그의 부연이 이어졌다. "한번 보세요. 지금은 각 동마다 각종 예술교육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문화센터가 있잖아요? 좋은 의미로 보면 얼마든지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으니 한마디로 문화의 보편화가 이뤄진 셈이죠. 하지만 이 놀라운 발전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이에요."

박혁남 서예가의 지적은 계속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과거와 달리 수준 높은 예술가를 찾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고뇌하기보다는 즐기려는 거죠. 또 생계 등의 문제로 목숨 걸 듯이 예술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고요."

하지만 이를 탓하고 몰아세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전에는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는 한문으로 쓴 서예 작품을 최고로 친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짧고 명쾌한 글, 쉽고 아름다운 글을 찾는 풍류가 현재의 흐름이에요."

인천시 연수동에 있는 그의 ‘의곡서예실’ 한 귀퉁이에 연습 삼아 써 놓은 글이 이때 눈에 띄었다. 바로 ‘뽀뽀가 행복이야’란 글귀다. 서예가 점점 화석화돼 가고 있는 시대에서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중진 서예가의 젊디 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수원대 미술대학원 서예전공 겸임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인천에서도 개인 교육과 교육기관 출강을 통해 후학 양성에 나서고 있다"며 "서예의 정신과 캘리그래피의 조형미를 동시에 배워 보려는 교육생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전했다. 그의 수준 높은 실력을 직접 배워 보고 싶은 시민들은 3월부터 시작하는 인하대 평생교육원 ‘한글서예 캘리그래피’ 과정에 문의하면 된다.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