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jpg
▲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연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으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 전체가 새로운 냉전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현 정부 초기에 추진된 단계적 신뢰 구축을 통한 통일 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한 ‘동북아 신뢰 프로세스’, 통일대박을 화두로 하는 드레스덴 선언 등 대화와 협력 증진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이라는 그간의 대북정책 기조가 북한 김정은정권에 대한 전 방위 제재와 압력 행사를 통한 핵 개발 포기를 강제하는 ‘박근혜 독트린’으로 180도 달라진 것이다.

 여권과 보수층은 김정은정권의 무모한 핵 개발과 도발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평가하는 반면 야권과 진보세력에서는 그간 햇볕정책으로 공들여 온 남북관계 개선이 개성공단 폐쇄로 물거품이 됐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번 사태로 몇 가지 분명해진 게 있다. 하나는 김정은정권은 과거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의 각종 도발은 전부터 있어 온 것이지만 김정은 시기부터는 성격이 달라진다. 후계자 수업 기간도 짧고 어린 나이에 정권을 잡은 김정은은 정권의 안정성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자기 고모부인 장성택의 처형부터 최근까지의 군 수뇌부에 대한 잦은 처형과 숙청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 제일의 관심사이자 과제는 자신의 생존이다.

이미 피의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를 해 왔기 때문에 그에게 실각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은 모두 김정은에게로의 권력 이행기에 권력 장악을 위한 명분과 업적 구축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불가피한 무리수였다.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이런 점에서 미국과 주변국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호령할 수 있게 함으로써 김정은을 할아버지인 김일성에게 필적할 만한 권위와 정통성을 가져다주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핵 개발 포기는 김정은정권이 유지되는 한 불가능하다.

 둘째, 중국이 북한 핵 폐기와 정권 유지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유엔을 통한 국제 제재에는 형식적으로 참여하겠지만 북한 정권이 붕괴되는 차원의 제재에는 결코 반대할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동북아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국과의 힘겨루기가 우선 관심사이다. 북한이 붕괴되고 한국 주도의 통일로 한반도에서 완충 세력이 없어지는 것은 남한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도 결사반대하는 중국으로서는 생각하기 싫은 악몽이다.

 셋째,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적어도 현 정부 임기 내에서 남북관계가 복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차기 정부가 어떤 대북정책을 새롭게 추진한다 하더라도 개성공단을 다시 가동하거나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참여 기업들 입장에서 이미 남북 양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상에서 볼 때 현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본질은 핵과 미사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문제의 핵심이다.

 정권의 안정성이 확보되기 전까지 그는 앞으로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할 것이고 다양한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향후 대북 제재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중국이 적극 동참하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는 데에는 일치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외부로부터의 대북 제재는 오히려 김정은정권의 내부 결속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차기 정권이 현 정부의 강경책을 계승할지도 불투명하고, 미국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의 방향도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의 향후 대북정책은 다음과 같은 기본 방향에서 창조적으로 설정돼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핵문제를 핵과 미사일이 아닌 김정은정권의 유지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이런 방향에서 북핵문제는 단기적 접근 방식으로는 결코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 김정은정권이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김정은과 엘리트 집단 그리고 일반 주민 사이에 정권과 체제 인식에 간격을 만들고 넓혀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가 지금보다 더 개방되도록 해야 되고,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한국사회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대북정책이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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