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
성철·법정·원택(엮음)/책읽는섬/192쪽/1만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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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雪戰)」은 근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인 성철과 법정 스님 간에 오간 대화를 성철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 찾아 정리한 책이다.

1967년 해인사 해인총림 초대 방장이었던 성철이 12월 4일부터 100일 동안 진행한 설법 ‘백일법문(百日法門)’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 젊은 승려가 법문에 끼어든다. 바로 법정이었다. 이때 법정이 이렇게 묻자 성철이 내놓은 답이다.

"스님께서는 현재의 이 생활에 만족하시는지요?"(법정) "대궐 속에 있는 이 사람이 어디로 가려 하겠소."(성철)

법정은 여러 가지 질문을 추가로 던졌다.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중도 이론을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중국 선종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등등.

법문이 무르익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의 육조 혜능이 일자무식이었다는 이야기에 대해 법정이 ‘가야산의 호랑이’이라 불리던 성철 앞에서 따지고 든 것이다.

그리고 법정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성철에게 이렇게 또 묻는다.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습니까?" 개신교에서 ‘정말 천국이 있을까’라는 의문처럼 초심자나 가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런 성철과 법정의 대화를 당시 백일법문의 녹취록에서 찾아낸 원택 스님은 이렇게 정리해 놓고 있다.

"법정이 성철에게 던진 질문들은 성철의 설법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포석이자 서른 후반에 접어든 청년 법정의 불교에 대한 간절한 관심과 생각 그리고 그의 마음 한구석을 엿보게 만드는 창문이기도 한 것이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서 묻는 것이다. 성철의 현답을 이끌어 낸 법정의 현문들을 엿볼 수 있다. 이때 성철의 넓은 품도 역시 드러난다. 성철은 마치 영민한 제자의 도전을 즐거워하는 스승처럼 법정의 은근한 도전을 즐기는 음성으로 일일이 답했기 때문이다."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을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을 「설전(雪戰)」으로 지었다.

성철이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은 반드시 불전에 3천 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해 놓자 법정이 이를 폄하하는 글을 대한불교(현 불교신문)에 기고하면서 벌어진 1968년 일화도 등장한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법당에서 절을 하는 대학생 무리를 목격한 법정이 기고한 내용의 요지는 ‘절이 아니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는 굴신운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사자인 성철은 별 얘기가 없었지만 혈기 넘치는 젊은 제자들이 발끈해 절을 찾은 법정이 바깥나들이 간 틈에 방의 물건을 모두 치워 버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1982년 성철과 법정이 다시 마주할 시간이 생겼는데, 이때 다시 법정이 ‘3천 배’에 관해서 묻자 성철이 오해를 풀어주는 이야기도 소개된다.

이렇듯 성철과 법정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과 대화를 차근차근 읽다 보면 자아를 닦는 일상의 수행법과 불교의 근본적인 정신, 지도자의 덕목, 물질만능시대의 인간성 회복 문제 등에 대한 두 스님의 큰 울림이 다가온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마치 두 스님의 대화 하나하나가 명언처럼 들려올 정도다.

나눔의 세계: 알베르 카뮈의 여정
카트린 카뮈/문학동네/288쪽/3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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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44세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세기의 지성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모든 것을 정리한 책이다.

1942년 독일군 점령 하에 있던 프랑스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던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살던 사나이가 살인죄를 범하고 사형을 선고받고서야 비로소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닫는 이야기를 그린 「이방인(異邦人)」를 발표해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작가이다.

이 책은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이 갖는 문학적 가치와 대중적 명성에 비해 그의 생애와 작품 배경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의 친딸 카트린 카뮈가 펴낸 작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작품활동을 해온 알베르 카뮈의 족적을 더듬으며 아버지의 창작활동에 영감을 준 원천들을 되짚어본다.

이 책은 카뮈가 지나쳐온 공간들인 지중해·유럽·세계라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카뮈가 태어난 알제리와 그의 어머니의 고향인 스페인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자세히 다룬다.

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  
DW 깁슨/눌와/408쪽/1만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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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원도심 개발을 추진하는 지역의 행정가들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선 시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은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국내 도심재생의 현실과 미래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여 년 전만 해도 유색 인종과 이민자들의 주거 지역이었던 맨해튼 일부 지역과 브루클린에서 거주하고 있는 수십 명들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입장을 담아냈다.

‘도심 개발로 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긍정적인 일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게 만드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는 저자의 결론은 귀 담아 들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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