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jpg
제97주년 3·1절이 며칠 전에 지났다. 일제의 총칼 아래 나라 잃은 국민이 "대한민국 만세"의 자주 독립을 외쳤던 1919년 그날이 어언 한 세기에 가까워져 간다.

조국을 잃고 모국어도 금지된 상황에서 창씨개명을 강요받고 우리의 역사를 배울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아픔이 어느덧 우리에겐 아득한 옛날로 멀어져 가는 것이 새삼 부끄럽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영화 ‘동주’는 빼앗긴 조국과 우리말을 끝없이 사랑했던, 스물 여덟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시인 윤동주와 그의 단짝인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청춘을 그린 작품으로, 시대의 아픔을 배경으로 하지만 2016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외침을 담고 있는 영화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외사촌 지간으로, 같은 해에 태어나 비슷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같은 시대적 비극 아래 살다가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2년형을 선고받아 차디찬 남의 나라 감옥에서 조국 독립을 몇 달 앞둔 1945년 차례로 스러져 간 가여운 청춘들이다.

 비록 시대적 비극이 이들의 전 생애와 함께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독립운동가의 힘겨운 사투와 영웅적 행동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가 아니다. 십대 후반부터 10여 년간의 청춘의 방황과 꿈 그리고 우정을 차분히 그려 낸 작품이다.

사실 시인 윤동주는 살아생전 시인으로 등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시는 발표를 염두에 두고 쓴 시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담담하고 자기고백적이며 꾸밈 없는 일기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이런 성찰적 목소리는 아름다운 서정성과 만나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과 같은 시를 남겼다. 그리고 윤동주가 시를 쓸 때마다 제일 첫 독자가 돼 그를 응원한 벗이 바로 송몽규다.

외사촌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열등감을 안겨 주는 대상이자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했다.

 윤동주에게는 끝내 이뤄 낼 수 없는 꿈이었던 신춘문예에 몽규는 십대에 당선되는가 하면, 행동하는 지성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동참했으며, 연희전문(현 연세대)에서 학업 최우수상을 받는 이도,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하고자 오른 유학길에서도 합격의 영광을 먼저 누리는 이도 언제나 윤동주보다 한 보 앞선 송몽규의 차지였다.

이처럼 둘 사이에는 묘한 경쟁의식이 늘 자리잡고 있었지만 몽규와 동주는 끈끈한 우정으로 서로 의미하고 경쟁하며 성장해 나갔다.

비록 조국을 잃은 상황 속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두 청년의 꿈은 같았지만 한쪽에서는 혁명 투쟁을, 다른 쪽에서는 시를 통해 이뤄 내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푸른 꿈은 그들의 사후, 우리 후대가 찬란하게 누리고 있다.

영화 ‘동주’는 실존 인물의 삶과 그 인생의 여백 속에 상상력을 덧입혀 창작한 작품이다. 흑백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로 채워지는 현대 영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만의 조용한 템포와 호흡으로 관객의 마음을 서서히 물들여 가는 작품이라 하겠다. 시대의 아픔과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를 일깨워 주는 한편, 청춘의 꿈과 고뇌 그리고 우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