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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비장애인 더불어 행복한 인천 만들기 ‘인생 목표’

한문덕 가천누리 대표이사 겸 길병원 행정원장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2016년 03월 09일 수요일 제8면

눈 언저리부터 입꼬리까지 늘어지고 골이 난 주름은 그가 살아온 길이다.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육십 평생에서 크고 작은 풍파를 겪었다. 그래서 지칠 만도 한데 그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풍기는 이미지는 시골의 후덕한 촌부와도 같다. 그가 보여 주는 웃음은 함께 있는 이를 편하게 한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소년가장이 된 그는 가난이 싫었다고 한다. 번듯한 첫 직장을 구하고도 학습 과외로 돈을 벌었다. 시쳇말로 하면 ‘투잡(Two Job)’인생이다. 악착같이 벌어 기울어져 간 집안도 일으켰다. 남을 돕는 일에는 가장 앞장섰다.

 그렇게 40여 년이 흐른 2016년, 중년은 ‘장애인 고용’이라는 일에 발을 들인다. 세상 사람 모두 안 된다고 한 그 일이다. 그것도 최일선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 중이다. ‘가천누리’ 초대 대표이사인 한문덕(63)길병원 행정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가천누리’는 가천대 길병원 자회사로 2014년에 설립됐다.

 # 소년가장 한문덕, 40년 봉사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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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시절, 그해 12월 5일은 유난히 추웠다. 그날은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는 곧 드러났다. 그에겐 ‘소년가장’이라는 큰 짐이 어깨를 짓눌렸다. 가세는 기울고 어린 동생들은 오빠 문덕에게 보채기 일쑤였다. 일을 끝내고 돌아온 어머니의 헝클어진 머리를 보자면 유명 고교 진학은 그에겐 사치였다. 같은 반 동무들은 1차로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에겐 모교 재단의 고등학교 진학이 최상의 결정이었다. 재단에서 3년간 장학금을 주는 조건은 당시 그에게 유일한 벌이였다.

 이른 시기에 찾아온 소년가장의 역할이 ‘40년’이라는 나눔봉사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됐다. 그때를 회상하는 한 원장은 "당시 그런 결정은 어린 나로서는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며 "형이라도 있었으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한문덕이 돼 있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 한국 장애인복지정책 세상에 나오다

 한 원장의 공직생활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였던지라 마냥 앉아서 행정고시를 준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공직생활은 1978년 ‘4급 을류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서부터다. 첫 근무지는 중앙부처에서 근무한 그의 화려한 경력과는 전혀 무관한 농수산물통계사무소 괴산출장소였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고시보다도 어렵다는 ‘공개경쟁 승진시험(이하 공승)’에 합격하면서 시작됐다. 단 12명을 선발하는 공승에서 1만 명에 이르는 6급 공무원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당당히 2등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1997년 보건복지부 근무시절 장애인 복지계획 5개년을 만드는 핵심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한 원장은 수십 년 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날을 꿈꿔 왔다고 한다.

 한 원장은 공직에 있을 때에도 직원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문화생활에서 소외된 장애인들을 위해 직접 색소폰을 배워 재능기부할 정도로 열정적인 그였다. 당시 맺은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질 정도로 ‘정(情)’이 많은 그다. 최근에도 인천시 옹진군 장봉도를 찾아 장애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40년 봉사직을 놓지 않고 있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보듬은 ‘가천누리’

 "가천누리는 ‘박애’, ‘봉사’, ‘애국’의 설립 이념을 실천한 장애인 고용기관입니다. 이 때문에 가천누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길여 가천대 총장의 철학이 담긴 가천대 길병원의 자회사라고 당당히 소개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그랬다. 실패했다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한 그 일은 기우였다. 가천누리는 설립 1년여 만에 보기 좋게 세상에 안착했다. 그것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우뚝 섰다. 국내 최고의 연구중심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의 자회사로 말이다. 설립 초기에 근무한 21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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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현재 30명으로 늘었고, 2억 원의 예산 절감도 이뤘다.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으로서 활용되는 의무기록이 그들 손에서 의료‘사(史)’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가 꿈꿔 온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가 이뤄진 것이다.

 한 원장은 "가천누리가 설립되면서 병원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가족으로 융합되는 모습이 가장 큰 변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병원이라는 특수 근무지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직원들이 깨우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길병원, 인천시민에게 다가가다

 한 원장에게는 이제 또 다른 목표가 있다. 인천시민에게 가천대 길병원이 다가가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 등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일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길병원 가족 모두가 동참을 약속했다 한다. ‘(가칭)길병원 사회봉사단’이 곧 발족한다. 이를 두고 한 원장은 가천누리로 인한 ‘나비효과’라고 말한다. 가천누리가 길병원 직원들을 변화시켰다는 얘기다. 최근 길병원이 문을 연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역시 가천누리라는 반석에서 시작됐다.

 한 원장은 "길병원이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자궁암 무료 봉사와 심장병 어린이 돕기, 국제 의료봉사 등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했지만 알지 못하는 시민이 많다"며 "길병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뭘 했느냐고 되묻더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인천시민의 품으로 다가가는 병원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병원가족들 모두 동참하게 됐다"며 "인천이 살아야 길병원이 산다"고 의미를 전했다.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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