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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한국의 사찰에 있는 탑은 부처를 대신하는 종교적 상징물이며, 이에 따라 불교인들에게 탑은 부처만큼 염원을 비는 대상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탑은 인간의 고소충동(高所衝動)에 대한 의지의 반영물로도 존재해 왔다.

 인간은 세상에 자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영향력을 필사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하늘 높이 자신의 존재감을 비약시키려는 열망을 쉽게 감추지 못하는 성향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권력 의지와 지배 욕구를 자제하거나 절제할 수 없을 때 하늘을 향해 탑을 쌓았다. 서양의 탑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하게 솟은 첨탑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구약성서의 바벨탑 이야기도 이러한 배경에 맥이 닿아 있다. 구약성서 시대 바벨에 살았던 사람들은 뱀의 유혹에 빠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고 추방됐던 그곳을 향해 탑을 쌓기 시작했다. 세계를 지배했다고 생각한 바벨인들은 하늘을 향해 탑을 올리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이러한 불손한 시도와 행위에 분노한 하나님으로부터 처벌을 받고 만다. 신은 탑을 쌓는 데 동원된 사람들의 언어를 모두 다르게 만들어 혼란을 야기시키고 이 탑을 파괴한다. 이 기록은 물론 언어 없이는 사회의 구성과 유지가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인간은 물리적으로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으며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만이 그곳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이란 선악과를 몰래 먹고 선과 악을 구별하고 좋고 나쁨을 변별하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마음의 창고가 비교와 구분으로 인해 집착과 애착으로 꽉 찬 부자들은 이 마음을 그대로 유지한 채 탑을 통해서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천국이고 에덴동산이다. 사람을 내 편과 네 편, 우리 편과 적으로 가르고 사물을 일방적인 자기 이익과 편의를 위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으로 쪼개는 식의 편파적인 마음으로는 마음이 가난한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라크는 바벨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인류 최초의 세계 대제국이었던 바벨론의 계승국을 자처했던 국가다.

그동안 이집트와 리비아 등의 독재자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듯이 이라크의 후세인 또한 권력에 대한 개인적 욕심으로 인해 이미 십수 년 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바벨탑과 이라크와 후세인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인 주체사상탑과 북한의 김정은과 똑같은 모습으로 겹쳐지는 것은 우연만은 아닌 듯싶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15개 이사국의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북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압박이 시작됐다. 이번 결의안에는 무기 거래, 해운·항공 운송, 교역, 금융 등에서 지금까지 4차례 채택됐던 핵과 미사일 관련 대북결의안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강도 제재가 포함됐다.

제재 결의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북한은 그동안 이란이 겪었던 것만큼의 고통에 시달리게 될 전망이다. 석탄과 희토류 등 광물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해 물자와 돈줄을 모두 막음으로 해서 개성공단 폐쇄와 더불어 북한의 경제난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바벨탑이 인간의 욕심이 가져온 과거의 비극이었다면 170m의 웅장한 주체사상탑은 인민이 굶어죽는 현재의 비극이며 호위호식하고 있는 21세기 독재자의 비극적 앞날을 예견해 주는 돌탑인 셈이다.

바벨탑이 하늘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었다면 핵과 미사일을 수단으로 한 주체사상탑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인류의 안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그리고 이 바벨탑이 신의 저주를 받았듯이 이제 주체사상탑은 전 세계의 경제적 응징에 직면해 있다.

 노란 장미를 좋아했던 릴케는 ‘바벨의 탑’이라는 시에서 탑을 돌며 느끼는 화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노래한 바 있다. 그리고 곧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음을 맞이한다. 이 릴케의 죽음이 장미 가시가 고소충동에 가한 바벨의 저주였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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