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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경칩이 지나갔다. 때를 같이해 언론은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를 보여 주기 바빴다. 반면 환경단체는 알 낳으러 물이 고인 논이나 산간계류로 이동하다 처참하게 죽은 아스팔트 위의 개구리들을 보여 주며 속도를 앞세우는 사람들에게 공존을 모색하자고 호소한다.

 우리나라 개구리들이 모두 경칩 전후에 동면에서 나와 알을 낳는 건 아니다. 산속 나무뿌리나 낙엽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이른 봄 살얼음이 낮에 녹는 경칩 전후에 알을 낳는 종류는 북방산개구리와 한국산개구리, 그리고 두꺼비가 줄을 잇고 나머지는 늦는 편이다.

물이 고인 논에 녹색 이끼가 끼기 시작하는 4월에 들어서면 청개구리와 참개구리가 울음 경연장에 동참한다. 수컷이 암컷을 목 놓아 부르는 행동이다. 금개구리와 맹꽁이, 황소개구리는 한낮이 더운 늦봄이나 이른 여름이 돼야 알을 낳는다.

 한데 아닌가? 산록과 이어진 물 고인 논에 벌써 북방산개구리는 알을 수북하게 낳았고, 도롱뇽도 기다란 알주머니를 여기저기 흩어놓았다. 다른 종들도 서두를 듯하다. 모니터링에 나선 전문가는 북방산개구리의 산란이 예년보다 1주일 이상 빠르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일찍 낳은 알은 얼어붙을 수 있고 늦으면 천적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기에 대부분의 개구리들은 올챙이들이 최대한 안전하게 성장할 시기에 본능적으로 알을 낳는데, 1주일이 앞당겨졌다면 그만큼 봄이 빨라졌다는 의미가 된다.

 올챙이가 늘어나는 계절이면 올챙이를 잡아먹는 천적이 늘어난다. 천적들도 제 새끼를 건사해야 한다. 삼라만상은 그렇게 조화를 이루며 다채로운 생태계를 건강하게 이어간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1년에 한 번 태양을 돌고 하루에 한 차례 자전하는 한, 태양의 입사각도는 규칙적으로 변하니 우리나라와 같은 중위도 지역은 사계절이 명확하다. 지형의 차이와 해수의 변화가 날씨를 변덕스럽게 해도 이맘때 어김없이 봄이 온다.

 하지만 점점 불안하다. 개구리가 경칩 훨씬 전에 알을 낳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사실 금세기 들어 개구리의 산란은 눈에 띄게 앞당겨졌다.

 개화 시기를 달리하던 봄꽃이 동시에 만개하고 순서가 다르던 텃새들이 한꺼번에 울어댔다. 하지만 봄철이 혼란스러워졌어도 회복될 가능성을 버리지 않았는데, 감당하지 못하는 기상이변이 세계 곳곳에서 거듭되는 최근 3, 4년 전부터 불안이 엄습한다.

불 같은 더위가 전기소비를 급격히 높였던 지난 여름은 40년 만의 한파를 만난 지난 겨울로 이어졌는데, 1주일 빨리 온 올 봄은 순조로울까?

 계절이 1주일 빨라진 게 별건가? 그리 생각하기 쉽지만 계절에 맞게 수억 세월을 조화롭게 변화하는 생태계는 혼란스러워진다. 에어컨과 보일러로 계절의 변화를 무시하는 인간은 100년 전보다 섭씨 0.7도 정도 상승한 지구의 평균온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생태계는 뒤죽박죽이 된 지 오래다.

엉뚱한 시간과 지역에 가뭄과 홍수가 빈발하며 그 지역에 분포하던 생물종에 큰 변화가 초래된다. 봄이 1주일 빨라지면 미생물부터 거대한 동식물까지 꽃피고 알을 낳는 시간이 바뀌면서 생태계는 그만큼 헝클어진다. 내년 이후는 어떨까?

 생태계의 산물인 사람도 생태계의 안정된 흐름 안에서 건강하다. 석유를 막대하게 사용하는 과학기술을 앞세워 생태계의 보살핌을 잊고 계절의 흐름을 무시하지만, 숱한 재해의 경험은 한계를 거듭 경고한다.

석유는 앞으로 100년을 버티지 못할 것으로 관련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가운데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는 전에 없던 재해를 사람과 생태계에 안긴다. 아직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떨까?

 곧 논밭은 씨앗이 파종되고 고깃배는 바다로 나가겠지만 석유 없는 농업과 어업은 상상할 수 없다.

 농산물과 수산물을 겁없이 수입하면서 해마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음식쓰레기를 버리며 과식하는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20% 정도에 그친다.

석유 과소비가 만든 지구온난화는 계절의 혼란을 일으키고, 계절의 혼란은 지구촌의 농작물 생산에 막대한 감소로 이어질 텐데 우리는 마냥 태평하다. 경칩보다 먼저 나온 개구리들만 다급하게 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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