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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언뜻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고 비가 오다가 다시 개이나니, 하늘의 도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인간 세상 인정에 있어서랴. 나를 기리다가 문득 돌이켜 나를 헐뜯고 공명을 피하더니 도리어 스스로 공명을 구함이라.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譽我便是還毁我(예아변시환훼아),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조선 초기 문인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사청사우(乍晴乍雨)’라는 시문 중 일부다.

정치의 계절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정치권이다. 제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13 총선이 목전에 이르렀다. 공천을 둘러싼 신경전은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마찬가지다.

총선에서 공천 여부가 당선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때문에 소속 정당의 공천에 정치생명을 건다. 공천이라는 한판 승부를 놓고 벌이는 이들의 싸움이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 그 자체다.

이들에게서 인간적 양심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한때 같은 뿌리에서 자랐다 해 "우리가 남인가"하며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이들이다.

하나같이 장경오훼(長頸烏喙:갖은 고생을 해 가며 어려움을 이겨 냈지만 욕심이 많아 안락과 행복, 열매는 나눌 수 없다는 관상)의 심상(心相)들이다. 이들에게는 의리(義理)도 없고 도리(道理)도 없다. 오직 자신의 이익과 입신양명만이 눈앞에 보일 뿐이다.

한 뿌리에서 자란 콩이 있다. 콩을 볶는데 그 콩대를 태우니 솥 안 콩들의 울음소리가 더하다는 말처럼 차마 봐줄 수가 없다.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모습들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의 흩어짐과 뭉침도 이들 같지는 않다. 이(利)를 좇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 데에는 명분도 없다.

총선을 앞둔 이들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공천 여부다. 당도 가리지 않는다.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며 공천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차라리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이쪽 당 공천 탈락자들을 저쪽 당에서 주으려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유화 ‘이삭 줍는 여인들’에 대한 모독이다. 비록 그림 속이지만 이 여인들도 썩은 이삭은 줍지 않았을 게다.

힘을 한곳으로 모아도 부족한 때다. 어느 정당 가릴 것 없이 계파갈등으로 지리멸렬(支離滅裂)해 가고 있는 모습들이다.

붕새는 대나무 숲이 아니면 내려앉지 않는다 했다. 가시덤불 속도 마다하지 않는 연작(練雀)들이 나라의 정치를 망치고 있다. 이들이 쏟아내는 막말들이 보도되고 있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배신의 정치가 보인다.

인재다운 인사가 보이질 않는다. 한 정당의 20대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신청 공고에는 국가 개혁과제 수행 적임자, 국가 당면과제를 해결할 창의적 지도자, 대한민국 헌법 가치와 정체성을 확고히 할 지도자,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 차세대 지도자 등을 찾는다 했다. 과연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이 같은 요건을 갖춘 인사가 그 몇이나 될까.

유엔 안보리가 북한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나서도 우리 정치권은 강 건너 불구경 격이다. 이것이 우리 국회의 단면도다.

오죽하면 국민이 정치를 더 걱정하겠는가. 눈앞에 놓인 선거 때문에 국가의 어려움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한 노 정객(政客)의 충고도 있다.

이들 중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또다시 해야 하는 우리 국민들이다. 툭하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명문화돼 있다. 국민의 무게를 알라. 이를 아는 후보는 당선될 것이요, 그렇지 않은 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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