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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권홍 원광대 로스쿨 교수
원영이 사건, 3개월 된 영아 살인사건 등 아동학대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양육할 책임이 있는 부모들에 의해 범행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아동에 대한 우리의 문화와 법제도에서 찾아보고 싶다.

‘애들은 가라’라는 말을 우리 어른들은 쉽게 한다. 이 표현은 아동을 동등한 인격적 주체가 아니라 아랫사람으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동을 이렇게 대하는 배경에는 장유유서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적 전통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실에서 어른들에 대한 공경에 과거처럼 높은 사회적 가치가 부여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정책이 있고 그에 따르는 예산이 지원되는 반면, 학대받는 아동의 보호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으로는 아동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자원의 분배에서 정당한 자기 몫을 분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 문화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사회적 서열은 어르신, 남자와 여자 성인, 그리고 아동 순이었다. 농담 같지만 호주에서는 어르신과 아동, 여자와 애완동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인 남자 순이다. 즉, 장유유서에 따르는 우리와 달리 누가 더 사회적 약자냐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가치까지 장유유서 방식으로 보고 있다는 대표적인 증거를 형법에서 찾을 수 있다. 형법은 살인죄나 폭행죄에서 존속에 대한 살인이나 폭행은 그 형량이 높은 반면, 존속이 영아를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보통의 살인죄보다 관대하게 처벌하고 있다. 생명이라는 가치는 부모든 자식이든 동등하다고 평가돼야 하는데, 우리의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존속에 대한 범죄는 가중되고, 비속에 대한 범죄는 감경되도록 돼 있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가혹행위의 처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맞다. 하지만 영아에 대한 존속의 살해행위가 법률에 의해 감경되고,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에서 부모라는 신분적 이유로 감경된다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헌법적 ‘정의’가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형법 조항들은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가정문제는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옳지 못한 관습이 오랫동안 유지되다 보니 경찰은 가정 내의 폭력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관행은 부부 사이의 폭행은 물론이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폭행, 자식의 부모에 대한 폭행까지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아동을 동등한 주체로 보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아버지든 할아버지든 ‘You’라고 부른다. 언어부터 다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를 ‘당신’이라 부르는 것이 허용될 수도 없다. 아동이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이며 보호의 대상이라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단기간 내에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렵지만 국가와 사회가 아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아마도 국회와 정치권은 선거 공약으로 ‘아동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하지만 죽은 문자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약자인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예산을 공정하게 배정하고, 행정부가 올바르게 이를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동학대 또는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다른 어떤 사건보다 먼저 경찰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검찰과 사법부는 무관용의 처벌을 해야 한다. 그들은 약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형법의 존속에 대한 가중처벌과 비속에 대한 감경처벌 조항에 대한 폐지도 이뤄져야 한다. 존속에 대한 가중은 현행 살인죄에서도 법관의 재량으로 충분히 가능하며, 비속에 대한 감경은 이를 정당화할 헌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철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부분들이 가려지고 있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의 미래 세대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물론 어른들이 어른 대접을 받을 이유도 없어진다. ‘애들아 너도 같이 하자’는 상호 존중의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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