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청년(靑年)’ 인생의 젊은 시기를 일컫는 말에는 푸르다는 뜻의 ‘청(靑)’이 들어간다.

‘푸름’은 맑은 하늘이나 깊은 바다와 같이 밝고 선명한 색을 나타낸다. 또 곡식이나 열매가 덜 익은 상태를 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시리도록 찬란하고 아득히 높은 아픔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불안하니까 청춘이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다’라고 기술했다.

일제강점기 시인인 김용호(金容浩, 1912~1973)는 ‘싹’이란 시(詩)를 통해 ‘아하! 내 청춘은 이 두 바위틈에 난 고민의 싹’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탓에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일찍이 "역경은 청년에게 있어서 빛나는 기회이다. 젊은 시절 고생은 발전의 밑거름이다"라고 위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청춘은 고통과 아픔, 불안함과 궤를 같이한다. 그래서 그때의 아픈 기억은 시간이 지나서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해 기호일보사가 진행하는 ‘인천시민과 명사가 함께하는 애장도서전’의 마흔 번째 명사로 선정된 조선혜(61)㈜지오영 대표이사 회장도 청춘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10대와 20대 시절을 돌아보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며 "너무 힘들었지만 삶의 기둥이었던 책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바로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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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조선혜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럴 때면 저는 항상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대답을 하죠. 다들 돌아가고 싶어 하는 20대 시절이지만 전 싫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인생에 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했던 탓에 그때로 다시 돌아가 똑같은 걱정을 하며 살고 싶지 않은 거죠."

인일여고 시절, 그의 고민은 진로 결정에서 시작됐다. 어머니는 딸이 약사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에는 의사와 약사가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았기에 조 회장에게는 약사란 직업을, 그의 남동생에게는 의사란 직업을 정해 줬다. 하지만 여고생 조선혜는 수학이 싫었다. 과학도 재미가 없었다.

"약대를 가려면 이과를 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모든 이과 과목을 싫어 하니…."

하지만 어머니는 딸이 무조건 약대에 가고 약사가 돼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제가 문과로 가면 학교에 오셔서 이과로 옮겨 놓으시고, 또다시 문과로 옮기면 다시 학교에 찾아오셔서 ‘얘는 약대를 가야 하니 이과로 돌려주십시오’라고 부탁하시고…. 결국 저는 적성에 맞지 않은 이과 공부를 했고 울면서 약대에 진학하게 됐죠."

그는 고교시절을 돌이켜보면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웠던 기억이 많다고 한다.

"매일 생각했어요. 아, 난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뭐지. 하루하루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죠. 하지만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고. 저는 꿈을 찾고 싶었고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 서시와 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尹東柱, 1917~1945)시인의 ‘서시(序詩)’ 전문이다. 그의 나이 24세에 완성했다. 이 시는 시인의 생애와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담긴 상징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은 윤동주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하늘 아래 부끄러운 현실 속에서 그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시인은 외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험난한 현실이지만 도망가지 않고 운명과 맞서겠노라고, 절망을 극복하겠노라고 당당히 선포한다.

"윤동주 시인이 서시를 쓸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죠. 그러나 시인은 비극에 매몰돼 있지 않았어요. 현실에 당당히 맞섰고 꿈과 희망을 놓지 않았죠."

조 회장은 두 달에 한 번 이달의 책을 선정한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선정한 책을 선물하고 꼭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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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감을 쓰도록 한다. 책 읽기를 권장하는 조 회장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그렇게 선정한 책은 엘리베이터에 게시해 ㈜지오영 본사를 방문하는 외부인들도 이달에는 어떤 책이 추천됐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선정된 3월 이달의 책이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18세 소녀에서 40여 년의 세월을 건너 60대에 다시 펼쳐 든 책이지만 여전히 조 회장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고, 뜨거운 열정을 가졌던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윤동주 시인의 삶의 기둥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삶을 지탱하게 해 준 버팀목 같은 거죠. 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놓고 고민했던 저로서는 이렇듯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밝힌 시인의 용기에 큰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에서 정당하게 거짓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삶은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에서는 힘들고 어렵고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을 돌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구절에서 힘과 용기를 얻은 저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약대를 졸업했고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지금은 1천500여 명의 직원을 둔 의약품 유통 전문업체 ㈜지오영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

# 뒤돌아보는 인생

"인생을 볼 때 이런 생각을 해요. 뒤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말이죠. 사람은 누구나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또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요. 저도 서른여섯 살에 회사를 창립하면서 숱하게 힘든 일을 겪었었죠. 단 한 해도 쉽게 지나가는 해가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앞만 보고 달리지는 않았어요. 주위를 돌아봤고, 무엇보다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혼자만 뛰어가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일이 힘들었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는 조선혜 회장. 그는 내내 ‘고통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성장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쉽게 얻고 거저 얻는 것은 없다’며 청춘시절 그와 함께한 고통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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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고통과 힘듦을 참고 견딘 그였기에 세상에 작고 연약한 것들에 마음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도 힘든 시기를 겪었던 터라 요즘 청년들의 아픔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어요. 어렵고 괴롭고 그늘져 있는 그들의 인생에 힘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목표를 찾는 것이라 목소리를 높이는 조선혜 회장. 그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년들의 육체와 정신이 더욱 견고해지고 단단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이 물론 지금과는 다르죠. 또 젊은이들이 윤동주 시인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어도, 상황이 달라졌어도 이 땅의 청년들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부분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도, 또 여러분에게도 쉬운 날은 없겠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아갈 때 더 많은 인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길은 있으니까요."

# 조선혜 회장 프로필

학력사항

1973 인일여고

1977 숙명여대 약학대학

경력사항

2002.02~현재 지오영 대표이사 회장

2006.02~현재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수석부회장

2009.05~현재 숙명문화재단 이사장

2009.05~현재 지오영 네트웍스 대표이사 회장

2009.12~현재 청십자약품 대표이사 회장

2010.04~현재 호남지오영 대표이사 회장

2010.06~현재 대전지오영 대표이사 회장

2013.03~현재 대한약사회 부회장

수상내역

2005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2007 대통령 표창

대담=한동식 정치부장 dshan@kihoilbo.co.kr

정리=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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