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호 변호사.jpg
▲ 최명호 변호사
국민은 행정청, 세무서, 그리고 법원, 수사기관 등에서 국가를 가장 쉽게 접하게 됩니다. 행정청은 과거에 비춰 엄청나게 친절하고, 세무서는 뒷돈 주던 악습이 없어질 정도로 맑아졌습니다. 법원도 국민을 섬기겠다는 구호를 법원 현관에 큰 글씨로 내걸고 있을 정도입니다.

 수사기관은 어떠합니까? 호통치고 군림하는 외양은 없어졌지만, 내가 질문받지 않아야 할 내용들이 질문되고 답변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이상하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법에서 금지하는 유도신문을 수사담당자들이 쉽게 사안을 해결하는 무기로 오·남용하기 때문입니다.

 경찰, 검찰에서 유도신문에 당하고 원하지 않는 진술이 이뤄지고, 후련하지 못한 진술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부터 시민 여러분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제대로 볼일도 못 봅니다. 불안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보같이 내가 저지른 행동을 누구에게 속시원히 토로하지도 못하고 하소연도 못합니다. 혼자 끙끙 앓을 뿐이며, 화병이 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모든 원인은 법률에서 엄히 금하는 유도신문에서 비롯된 것이며, 수사담당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서 입니다. 여러분은 속은 것이며, 유도당한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지 않습니까? 국가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소중하게 보호받아야 할 일반 시민이 오히려 국가기관으로부터 무엇인가 당했다고 느낄 때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당하는 피의자는 내가 무슨 중죄라도 지은 기분입니다. 그러면 국가를 믿겠습니까? 사실 알고 보면 그들도 맡은 일을 정해진 시간에 쫓겨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늘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점에 그리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선례나 대법원 판례들에 지금 처리하는 사건을 가져다 맞추려는 행태를 보입니다. 사건을 안일하게 처리하는 방식이지요. 일을 안전하게 처리하고자 법률이 금하는 유도신문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합니다.

 국민이 나라를 믿지 않으면 일본과 같은 짝이 됩니다. 여러 차례 일본을 다니면서 공부한 점은 일본 국민들은 겉으로는 승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심으로는 국가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세금을 무지무지하게 뺏어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부터 국가를 믿지 않는 듯 보입니다. 먹고사는 것을 빼놓고는 모든 소득을 세금으로 뺏어갔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일본 국민들은 다다미 속에 현금을 숨겨 둡니다. 국민들이 국가를 믿지 않고 현금을 숨겨 놓는 속성에 지난 20세기 초 디플레이션이 계속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수차례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이 지금 겪고 있는 지난 20여 년간 디플레이션은 백약이 무효라고 합니다. 근본 원인이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은 국민이 국가를 접하는 최일선 기관입니다. 이러한 수사기관이 공정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불공평하다는 인식을 준다면 국민들은 그 즉시 국가를 믿지 않습니다. 국가를 믿지 못하는데 제 생명을 바쳐 나라를 지킬 것이며, 피같은 돈을 투자해 경제에 기여하겠습니까. 이렇게 해서는 어떻게 국가경쟁력이 생기겠습니까?

 시민 여러분, 수사기관에서 예, 아니오라고 답변하라고 요구받는 질문은 유도신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질문에는 과감히 답변을 거부하셔도 됩니다.

진술을 거부하셔도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수사기관 담당자 여러분, 범법자를 쉽게 알아내기 위해서 약간의 유도신문 등으로 사실을 밝히고 자백을 받는 것이 손쉬운 방법인 듯 보여도 제발 이러한 방법은 버려야 합니다. 수시로 진술인에게 진술을 거부해도 되고,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주지시켜 줘야 합니다. 조사 원칙을 지킬수록 조사 상대방은 당장 수사기관을 신뢰하고, 나아가 국가를 믿게 됩니다.

국민에게서 국가에 대한 믿음을 얻는 것, 그로 인해 나라가 부강하게 되는 진리, 우리가 늘 동경하며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국민을 일선에서 대하는 여러분의 어깨에 놓여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