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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이번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결과 예측이 어려워 보인다. 우선 여당의 공천 파동으로 여권의 핵심 지역이라 하는 대구에서 무소속과 야당의 돌풍이 거세다. 호남에서는 제3당인 국민의당이 제2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유승민 파동을 보면서 새삼 우리나라의 헌법에서 규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유승민은 집권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소신 정책을 발표하고 청와대와 불협화음을 내면서 대통령에게 직접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 결국 사퇴하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헌법을 거론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청와대의 행태는 비민주적이고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셈이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어디까지 청와대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후 나타난 대구와 수도권 지역의 민심 이반은 유승민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영국 주간 경제전문 잡지 Economist 최신호 커버 스토리 기사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숭배 열풍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시 주석이 최대 역점사업인 부패 퇴치를 밀어붙이면서 과거 관행처럼 유지돼 온 소위 중국식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을 ‘핵심’이라고 지칭하면서 과거 상무위원 간 나눠 가지던 분야를 시 주석이 모두 챙기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마오쩌둥 이후 금기시 되던 개인 숭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상무위원들조차도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시 주석이 직접 다른 상무위원들의 부패까지도 감시해야 된다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시 주석 본인도 과연 부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느냐이다. 최근의 파나마 페이퍼 스캔들에서 드러나듯이 시 주석 매형이 연루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고 빙산의 일각이라면 중국 정치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문제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요즈음 트럼프 때문에 시끄럽다. 처음에 트럼프가 온갖 막말과 기행을 하면서도 결국 얼마 못 가서 사퇴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크게 주의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공화당 예선이 중반을 넘기면서도 그가 여전히 수위를 지키자 문제는 심각해진 것이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의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기존 정치권이 아닌 밖에서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비정상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미국사회의 병리현상을 방증하는 사건이라 하겠다.

 시저의 암살로 대변되는 과거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 로마의 최전성기에 급속히 확대돼 가는 영토와 인구를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인 공화정보다는 황제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제정이 더 나은 정치제도였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과 로마의 공화정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의 공화정 등 근대 이전에 민주주의의 역사와 경험이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는 근대 이전에는 오로지 군주정이 유일한 정치체제였다. 군주정도 물론 그 안에 다양한 운영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조선 초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의 군주제는 임금은 군림만 하고 실제 정치는 재상들이 하는, 유학을 배운 사대부들에 의한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엘리트 집단지도체제였다.

태종 이방원에 의한 쿠데타로 왕권주의적인 군주정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조선의 군주정은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왕권보다는 사대부 양반들의 신권이 강한 군주제라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중국의 경우 청대만 보더라도 황제는 사실상 신하에게서 아무런 실질적인 제약을 받지 않았다.

 21세기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 4·19 혁명이나 6월 항쟁 등 밑으로부터의 혁명에 의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우리나라가 아마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각 나라의 문화와 전통, 역사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이 대표자를 직접 선출하는 기본적인 요건은 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식 특색이 강화되는 중국보다는 대통령을 쉽게 비방할 수 있는 우리의 정치체제가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하는 모델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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