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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인천대 외래교수
1935년 봄,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본을 처음 방문하고 쓴 기행문에서 일본을 ‘벚꽃과 대포’로 묘사했고,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교수는 1944년 6월 미 국무부로부터 ‘일본은 어떤 국민인가’라는 연구를 위촉받아 1946년 ‘국화와 칼’이라는 일본문화의 틀을 제시했다.

이들 서양 지식인이 함축한 일본의 진면목은 ‘벚꽃과 대포’이자 ‘국화와 칼’이라는 상징으로, 겉모양과 속내가 서로 모순된 이중의 얼굴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왜 일본이 독일과 달리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 침략의 반인륜적인 범죄 사실을 인정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이를 사죄할 용기가 없는가라는 풀리지 않은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우리에게 오랫동안 고통을 가한 이웃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는가.

 베네딕트 교수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원인을 계층구조 확산의 시각으로 봤다. 일본은 일찍이 무사중심의 계급제도를 구축한 계층제도 사회였다. 그들은 각국이 서로 절대적 주권을 가지게 되면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일본은 세계 질서 안정을 위해 계층구조의 지도자인 자기들이 패권국이 돼 세계 각국을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질 수 있는 계층화를 이룩하게 함으로써 세계 통일을 기할 수 있다는 전쟁논리를 주장했다고 해석했다. 불행한 것은 일본의 이러한 환상에 대해 피점령 국가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까지 일본은 이러한 이상이 도덕적으로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일본은 수치를 기조로 하는 문화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이는 죄를 기조로 하는 문화와 구별되는 것이다. 도덕의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고 양심의 계발을 의지로 삼는 사회는 ‘죄의 문화’에 속하고 내면적인 자각에 의해 선행을 하는 데 반해 ‘수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력에 의해 선행을 하게 된다.

따라서 죄를 범한 사람은 이를 감추지 않고 고백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나 수치가 주요한 강제력이 되는 사회는 과오를 고백했다 하더라도 전혀 마음이 편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의 나쁜 행위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한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고백은 되레 스스로 고민을 자초하는 일로 생각된다. 따라서 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해, 신에 대해서도 고백한다는 습관은 없다.

 일본인의 이러한 수치는 자신의 의무와 의리를 다하지 못했을 때 타인의 비판에 대한 반응으로써, 다른 사람 앞에서 조소당하거나 거부당했다고 믿게 될 때 수치를 느낀다.

그러나 수치를 느끼기 전까지 비판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는 자기의 비행을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죄의 문화에서는 죄의식에 고민하고 그 죄를 고백함으로 죄책감이 경감되는 ‘죄의 문화’와는 매우 구별되는 행위이다.

 이 같은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으로 볼 때 일본이 독일과 달리 전쟁 도발의 부도덕성에 대해 둔감할 뿐 아니라 식민지 전쟁 중에 감행된 만행에 대해 죄의식보다는 그들의 악행이 드러남으로써 문명국가들에게 수치심을 느낄 뿐이다. 더욱이 그 증거가 드러나지 않는 한 고민할 필요가 없으므로 가능한 반인륜적인 사실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라는 것이 베네딕트 교수의 주장이었다. 즉, 평화헌법에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언적인 결론 때문이다. 이미 올해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전환했다.

이러한 전환은 중국의 위협에 대한 미국과의 공동 보조에 기인했을 수도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중시전략을 전개해 왔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독도, 교과서문제 등의 현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사적으로 어려운 관계였으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성공이란 공유가치를 끈으로 해 양국의 관계 개선을 미국은 절실히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안정과 주변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 유지의 축으로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속담에는 ‘과거를 잊으면 한쪽 눈을 잃게 되나 과거에 집착하게 되면 양쪽 눈 모두 잃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처한 북한의 핵 위협과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경쟁의 엄중한 현실에서 안정과 번영을 지킬 수 있도록 지혜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귀 기울여야 할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한 손에는 꽃, 다른 손에는 무기를 내밀면서 선한 이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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