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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오늘은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 국가가 제정한 ‘법(法)의날’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대학생 10명 중 8명꼴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사회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한다.

 법률소비자연맹이 법의날을 앞두고 실시한 법의식 설문조사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83.54%를 차지했다는 조사 결과다. 재판의 공정성에는 ‘불공정하다’와 ‘매우 불공정하다’는 응답이 33.42%였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불공정하다’와 ‘매우 불공정하다’는 답변이 38.39%로 법원과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급히 척결할 비리로는 57.54%가 정치계를 꼽았다. 이어 공직 비리 18.18%, 사법·검찰 비리가 11.65%로 뒤를 이었다.

 정치계야 그렇다치더라도 법조계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법조야말로 인권 최후의 보루라 믿고 있었던 시민들이다. 이제 법조에 대한 불신이 추락할 대로 추락했으니 인권마저 보장받을 곳이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20대 총선에서 상당수 현역 국회의원들이 공천에서 탈락하고 본선에서 낙선했다. 때문에 이들 의원은 제20대 국회 출범 전까지는 국회의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들은 연락두절 상태로 국회가 태업상태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민생법안 처리조차 제쳐 둔 국회가 무슨 입법기관인가.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앞장서 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고 있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이상한 나라다. 제20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있다. 총선 당선인 중 상당수가 선거법을 위반해 가며 당선된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또한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법을 어겨 가며 당선된 국회의원에게 신성한 입법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지켜지지 않는 법전(法典)은 도서관에 쌓여 있는 폐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필자의 눈에는 유독 법조인들이 법불가어존((法不可於尊:법은 존귀한 신분에게는 예외)이다. 말 그대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법의날을 앞두고 들려왔던 몇몇 뉴스들이 우리를 씁쓸하게 하고 있다. 그 하나는 검사장급인 법무부 고위 간부가 직무와 관계없는 주식 투자 행위로 거액의 주식 차익을 챙겼다는 소식이다.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검찰에 촉구한다. 최근 잇따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일부 재벌가의 속칭 ‘갑질 횡포’도 대형 로펌이 나서 변론하면 당초의 일벌백계(一罰百戒) 호언장담은 온데간데없고 솜방망이 처벌로 종결되곤 한다는 뉴스 또한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영국의 법 속담에 ‘조개입은 칼로 열고, 변호사 입은 돈으로 연다’라는 말도 있다지만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지는 현상들이 우리 사회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추행 의혹이 있던 전 검사의 변호사 등록 신청에 대해 지방변호사회가 ‘적격’ 의견을 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법조 비리가 끊이지 않자 법조윤리위원회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수임 비리 등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 한다. 판사와 검사·변호사를 일러 우리는 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 칭한다. 불리는 명칭은 달라도 한 뿌리에서 난 형제들이다.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누가 누구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을까. 복덕방 영업의 영역인 부동산중개업에까지 뛰어들고 있는 변호사들이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려고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로스쿨을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해마다 법의날이 돌아오면 의구심을 품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법조인에게도 과연 윤리관이 있는가?’가 그것이다. 필자가 만난 시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회의적이다. 지금도 주위를 둘러보면 국헌(國憲)을 문란하게 하고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오늘은 법의날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법의 정신’을 한번쯤 되새겨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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