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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진 전 인천안산초교 교장
물건을 사고팔았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사회생활에서 주고받았던 사이는 주고받음이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끈끈한 인간의 정이 흐른다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마음의 정으로 함께 생활하는 미덕의 지혜로운 판단의 작용일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보다도 인생의 슬기와 지혜를 애지중지했다. 이러한 사람은 인생의 값진 진주와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 선조들은 정치가나 부자보다도 지혜로운 철인이나 선비를 더 존중했다. 인도의 철학자 우파니샤드가 가장 역설한 것도 지혜였다. 밝은 지혜가 우리에게 인생의 구원과 해탈을 가져온다고 했다.

 지식(知識)은 반드시 인생의 구원과 빛을 주지는 못한다.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위대하고 선량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가장 우러러보는 민족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처럼 배우기를 좋아하고 교육과 학문을 숭상한 민족은 없었다. 이들은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지만 가정에서는 지혜를 배운다.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지식이 가르쳐 주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지혜로, 그들의 위대한 정신적 생활의 근본으로 삼았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그들은 랍비라 했으며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다. 그들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을 부모의 엄격한 의무의 하나로 삼으며, 산다는 것은 곧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자녀들 또한 공부를 최고의 삶으로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지성인 중 유대인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를 위시해 아인슈타인, 키신저 모두가 유대인이다. 어려서부터 배우며 실생활에 적용하는 일은 유대인의 민족적 전통이다. 유대인의 격언 중 ‘지혜의 빛이 찬란하다’란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을 현인(賢人)이라 한다. 현인이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며, 강한 자는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항상 배우고자 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공자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철학자 플라톤은 강한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항상 감정의 폭풍이 일기 쉽다. 분노니 질투니 절망이니 탐욕이니 시기심이니 하는 강한 폭풍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때 파멸하고 타락하고 절망에 빠지기 쉽다. 요즈음 참지 못해 나타난 분노의 비참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운전보복, 폭력, 삐뚤어진 양육권 등이 이러한 비극의 한 예다.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은 나의 마음이요, 나의 감정이다. 신학기를 맞아 교문에서 사랑의 훈훈한 정을 엿볼 수 있다. 등교하는 교문은 교칙 위반 적발이 아닌 교사와 학생이 서로 껴안아 주며 사랑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봤다. 얼마나 보기 좋은 사제 간 사랑의 우정이 아닌가.

 옛 선인들이나 유명한 철학자들은 부동심(不動心)을 강조했다.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내가 나를 누르고 나의 감정을 억제하며 지면서 사는 사람이 바로 이기는 사람이며 지혜로운 마음의 소유자다. 풍족한 사람이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스스로 풍족하다고 생각하면 그는 부유한 사람이며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남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은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맹자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했다. 남에게 사랑을 받고 싶거든 내 주위의 사람을 칭찬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심정을 보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한두 가지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남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해 줘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어떠한 끈끈한 정이 있다. 이는 잡다한 지식이 아닌 지혜로운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현인(賢人)다운 인간으로서 지혜로운 생활은 인생의 값진 진주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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