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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영화를 지칭하는 누아르 영화는 전반적으로 음산한 톤과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암흑 세계와 그 안의 폭력을 다룬 작품을 뜻한다.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서 주로 제작된 일련의 범죄영화들은 2차대전 이후 프랑스에 소개됐고, 프랑스 영화 비평가 사이에서 ‘검은 영화’라는 뜻의 필름 누아르(noir)라 지칭되면서 그 용어가 탄생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은 1948년도 작품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복잡한 구조와 욕망에 굴복해 범죄를 저지르는 추악한 인간의 단면 그리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정하고 비정한 주인공 등 누아르 영화의 전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가진 거라곤 건강한 신체와 자신만만함뿐인 아일랜드 출신의 선원 마이클 오하라는 공원을 산책하던 중 위험에 처한 미모의 여인을 도와주게 된다. 그 일이 계기가 돼 마이클은 아름다운 여인 엘사의 크루즈여행 선원으로 동행하게 된다.

마이크와 엘사 두 사람은 마치 거짓말처럼 첫눈에 반하게 되지만, 그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선 현실적으로 봤을 때 마이크는 빈털터리에 가까웠다.

그저 하루하루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운이 좋아 배를 타게 된다고 해도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바랄 수는 없는 처지였다. 반면 엘사는 뉴욕에서도 알아주는 부유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막대한 재산 뒤에는 불패 신화의 변호사 남편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남편은 뒤틀릴 대로 뒤틀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무기로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것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하반신 장애로 인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내의 온전한 사랑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에게 스토커적 집착을 보이던 변호사 아서는 젊고 강인한 마이크의 존재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이들 세 사람의 어긋난 사랑과 욕망은 아서의 친구 조지의 등장으로 더욱 꼬이게 된다. 마이크에게 현금 5천 달러를 사례금으로 제안하는 조지의 어두운 거래. 그 돈과 함께 엘사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마이크의 허황된 욕망.

그리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또 다른 음모를 꾸미는 아서와 엘사.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는 이들 네 사람의 비정한 계획은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

셔우드 킹의 원작 소설 「내가 깨기 전에 목숨이 다한다면(If I Die Before I Wake)」을 각색한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 뿐만 아니라 누아르 영화라면 한 번쯤 등장하기 마련인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 여주인공 엘사 역의 리타 헤이워드의 변신도 눈여겨볼 만하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영화 ‘시민 케인’으로 단번에 천재 감독의 반열에 오른 오손 웰스의 1948년작 ‘상하이에서 온 여인’은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미장센으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서늘한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영화의 엔딩에 등장하는 ‘거울 방’ 장면은 거짓과 탐욕으로 분열된 자아의 모습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보여 주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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