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 때쯤이었을 것이다. 인천이 고향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그리던 노스탤지어를 들어봤다.

 빛 바랜 흑백사진만큼이나 오래된 추억 속에는 한결같이 ‘큰 나무’가 있었다.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 한 노인은 어릴 적 자신이 살던 서구 연희동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개발되고 나서 집터조차 찾기 힘들다고 했다.

 또 다른 노인 역시 나무에 얽힌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있던 느티나무 아래서 사랑을 키웠던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새삼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환경에서 지키고 보호해야 할 나무와 같은 소중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오래된 나무는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정신문화다. 수백 년을 한 자리에서 비바람 맞으며 꽃피우고 열매 맺었을 큰 나무에게 물었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수백 년 함께 살아온 큰 나무이기에 이곳에 사는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커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1)참성단 소사나무

인천 큰 나무, 그 첫 번째 주인공은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서 오랜 세월 참성단(塹星壇)을 지켜온 소사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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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전경
 비록 크기와 수령 면에서 ‘큰 나무’라 하기엔 볼품없게 여겨질 수 있지만 민족의 성지 참성단에 떡 하니 자리잡은 것을 보면 결코 범상히 여길 나무는 아니다.

 무엇보다 척박한 환경에도 잘 견디는 소사나무의 특성은 우리 민족의 강인함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굽은 줄기와 작은 잎사귀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우리 정서와도 잘 어울린다.

 참성단 소사나무는 2009년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일한 소사나무다. 당시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사유로 이곳 소사나무가 전형적인 관목 모습에 나무갓이 단정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참성단 돌단 위에 자생한 모습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나무라 할 수 있다는 평을 내놨다.

 참성단 소사나무의 가장 큰 줄기의 높이는 4.8m, 뿌리 부근 둘레 2.74m, 나무갓 폭은 동서방향으로 7.2m, 남북방향으로 5.7m에 달한다. 다른 노거수에 비해 웅장함은 없지만 마니산 정상을 촬영한 사진작품 속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크고 신비해 보인다.

 매년 음력 5월 2일이면 이곳에서 ‘단군왕검 탄신제’를 봉행해 온 숭조회의 윤희선(71)이사장은 "(내가)아주 어릴 적에도 이곳 소사나무는 마치 제단의 일부인 양 지금과 똑같은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누가 언제 왜 심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참성단과 관련한 사료와 문헌은 많이 전해지지만 천연기념물인 소사나무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소사나무에 대한 수령도 확실치 않다.

 「고려사」나 「세종실록」을 통해 전해지는 참성단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리던 ‘제천단’으로 소개되고 있다. 고려말 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은 "하늘이 쌓은 것은 아니지만 누가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들 고서에는 소사나무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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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사나무의 생기를 잃어버린 앙상한 가지가 곳곳에 보인다.
좀 더 최근으로 돌아와 「강화군지」에 실린 참성단에 대한 기록에는 조선 인조와 숙종 때 참성단을 개·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중 숙종 42년(1716년)에 강화유수 최석항이 쇠락한 참성단을 개축하면서 소사나무를 심었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소사나무의 수령은 300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석축을 쌓으면서 그 위에 뿌리가 뻗는 나무를 심었을 리 만무하고, 소사나무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최대 150년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풍 산림사업자문위원(인천산림조합)은 "다른 나무들과 달리 바위틈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사나무의 특성상 누가 심었다기보다 자생적으로 큰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했다.

 강화군청 윤승희 학예사 역시 "구한말 일본인들이 참성단을 봉화대 또는 천문대로 지칭하며 성역임을 무시한 기록이 있고, 그들이 실측한 자료와 흑백사진에 소사나무가 등장하지 않는다"며 "실제 나이는 이보다 더 어릴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수령이 얼마가 됐건 이곳 소사나무가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壇樹)나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처럼 신성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전쟁 때 제단을 둘러싼 석축 한쪽이 무너져 강화군과 화도면 주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개·보수했지만 소사나무가 서 있는 곳은 여지껏 단 한 차례도 붕괴된 적이 없다. 강화군 등 전문가들은 소사나무의 뿌리가 돌과 돌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곳 소사나무가 신성시되는 이유는 또 있다. 소사나무 아래 지름 1m가량의 우물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이를 둘러싼 구전 설화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강화군지」에 소개된 설화에는 마니산 정상 소사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고 있던 두 신선에게 물 한 잔을 얻어먹은 나무꾼이 무병장수했다는 신선설화가 전해진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이곳 우물물을 다시 나오게 한다며 소사나무 주변에서 관리인의 눈을 피해 무속인들이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윤 학예사는 "이곳 소사나무 아래 우물물은 큰 가뭄이 들어도 절대 마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우리 민족의 정기와 맥(脈)을 끊기 위해 우물 바닥에 콘크리트를 치고 소금을 뿌렸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어쨌든 지금은 우물물이 나오지 않아 덮개로 봉쇄해 놓았다.

 

▲ 소사나무의 생기를 잃어버린 앙상한 가지가 곳곳에 보인다.
소사나무는 원래 강한 바람이나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억센 나무다. 이 때문에 해풍을 막아야 하는 해안가 어민들은 일찌감치 소사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했다. 하늘로 키를 높이기보다 옆으로 줄기를 늘려 가는 소사나무의 ‘겸손한’ 생존전략 덕에 어민들은 바람을 막고 그늘을 얻을 수 있었다.

 시인 이가람은 그의 작품 ‘소사나무 숲’에서 황해의 파도와 해풍에 맞서는 ‘방파제’이자 ‘바리케이드’이며, 해변을 지키는 ‘옹이투성이의 노인들’, 그리고 ‘최후의 민병대’라고 표현했다.

 더욱이 한반도 허리를 관통하는 마식령산맥 끝자락 봉(峰)인 마니산은 남쪽의 한라산과 북쪽의 백두산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지금도 개천절이면 국가적인 행사로 제를 올리고, 매년 전국체전 때 성화(聖火)의 불씨가 7선녀에 의해 이곳에서 채화된다. 소사나무는 이 같은 민족의 성지를 지키는 파수꾼인 셈이다.

 인천지역 일대의 수목을 연구해 온 인천발전연구원 권전오 박사(생태학)는 일찍이 그의 연구논문에서 "소사나무의 분포와 서식 특성이 인천의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소사나무가 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마니산 소사나무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금도 그렇게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달 말 본보 취재진과 함께 탐사한 이곳 소사나무의 모습은 예전과 확연히 차이가 날 만큼 쇠락한 모습을 보였다. 개화기가 지나 한창 잎이 무성해야 할 시기지만 생기를 잃은 앙상한 줄기가 드러나고 밑동 일부가 썩어 들어가면서 초파리가 꼬이고 있어 당장 응급처치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참성단과 함께 우리 민족의 성지를 굳건히 지켜온 이곳 소사나무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참성단 소사나무 찾아가는 길

인천에서 강화 가는 버스는 생각보다 자주 있다.

인천터미널에서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70번과 700번, 800번 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내려 화도면 공영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로 다시 갈아타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마니산만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국민 관광지로 지정된 마니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상방리매표소에서 2천 원 하는 입장료(성인기준)를 내고 산림이 우거진 가로수길을 조금 걷다 보면 두 갈래의 등산 코스가 나온다. 급하지 않다면 단군로(3.4㎞) 코스를 추천한다. 개미허리까지 잘 포장된 산길을 선택할 경우 가파른 계단을 따라 정상까지 2.2㎞를 가야 한다.

단군로를 따라 1시간여 산책하듯 걷다 보면 정상 문턱에 372개의 계단이 나온다. 이곳만 올라가면 바로 마니산 정상인 참성단이다. 참성단이 반가운 이유는 해발 472m 정상에 도달했다는 기쁨과 함께 시원한 그늘이 돼 줄 소사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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