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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상고머리에 까칠한 수염. 영락없는 동네 ‘큰형님’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인천고등학교의 학생부장 한준희(43)선생님.

 나름 카리스마를 뽐내지만 학생들이 붙여 준 그의 별명은 ‘대머리독수리’다. 짧게 깎은 머리 때문만은 아니다. 독수리 같은 눈으로 학교 구석구석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다.

 인천고를 나와 이 학교에서만 벌써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국사 과목을 맡고 있는 무서운 ‘학주’이기 전에 까탈스러운 선배다. 그것도 졸업하면 적어도 한 번은 다시 만나야 하는 대선배다.

 "생활 지도를 맡고 있다 보니 늘 학생들에겐 경계 대상 1호죠. 그런 학생들의 심리를 잘 알기에 저 또한 그들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웃음)"

 인천고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학생들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많다. 이 학교 출신인 한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다. 야구부 비품창고 뒤, 백주년기념관 모퉁이 등 학생들만 알 것 같은 장소를 그는 늘 잠행한다.

 그가 이토록 숨바꼭질하듯 숨는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딱 하나.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담배는 해롭잖아요. 요즘은 담뱃값도 많이 올라 학생이 담배를 사 피우는 것도 큰 부담일 텐데 좀처럼 담배 피우는 녀석이 줄지 않네요."

 그는 인천고 학생 10명 중 2명은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지금 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건 단순히 호기심이나 반항심 때문만은 아니란 게 그의 판단이다.

 

그래서 그는 담배 피우는 학생을 적발해도 당장 벌점을 주거나 교내 봉사활동만 시키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무슨 고민은 없는지 집요할 정도로 묻고 필요하다면 부모님과도 상의한다. 그래도 끊지 못하는 학생은 동네 보건소 ‘금연클리닉’에 반강제로 보낸다.

 그가 이처럼 학생들에게 금연을 강조하는 이유는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담배가 모든 말썽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보면 어떻게든 감추고 숨기게 되고 ,괜한 근심거리가 생기게 마련이죠. 그러다 보면 비슷한 친구들끼리 어울려 나쁜 길로 빠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수년째 담배를 끊지 못하는 애연가다. 그가 있는 학생부 교실 주변은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는 금연 포스터와 홍보물이 가득한데도 말이다.

 "지금은 그들에게 제가 선생님이지만 졸업하면 술 한 잔 기울이며 담배 한 개피 나눠 필 수 있는 선배잖아요." 그가 담배를 끊지 못하는 궁색한 변명이다.

 그렇게 편하게 만나 술 한 잔 할 수 있는 제자가 그에게는 많다. 학교를 졸업해 금속가공 일을 하고 있는 정훈(가명)이도 그 중 한 명이다.

 "이 학교 발령받아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 만난 녀석이에요. 유난히 말수가 적은 아이였죠.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 때 우연히 그 녀석 노트를 봤는데 온통 칼을 그린 그림뿐인 거예요.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위 선생님들과 상의도 했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볼 뿐 방법이 없더라고요. 결국 자퇴하겠다는 녀석을 설득해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했어요.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 직장도 잘 다니고 있어 가끔 만나 술 한 잔 하는 사이입니다."

 한 선생님은 아이를 전학 보내려는 부모님을 설득, 2학년과 3학년 그 아이 담임을 맡았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에 삐뚤어진 삶을 선택하려 했던 한 제자를 위해 2년여의 시간을 거의 함께 지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해서 그 아이가 문제아는 아니잖아요. 사실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색과 저마다의 문제가 있어요. 그 색을 알아주고 품고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이죠."

 요즘 담배와 함께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미 생활화돼 있는 SNS가 그에게는 새로운 골칫덩어리다.

 "2년 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우리 학교도 마침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려 했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저희 학교 학생들도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죠. 그때도 아무 생각 없이 페이스북과 카톡에 세월호 희생자를 비하하는 글을 퍼 나르던 아이들이 있었어요. 문제가 됐던 ‘일베충’의 글을 퍼 나르며 자신도 주목받기를 바랐던 거죠. 지금도 폭력적이고 저속한 동영상이나 글을 아무 생각 없이 퍼 나르는 학생들이 간혹 있는데, 아무리 주의를 주고 야단을 쳐도 그때뿐인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한 선생님은 제자들과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통해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 애를 쓰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고도 했다.

 기억에 남는 제자 중엔 이 학교 전교회장 출신의 (김)성훈이란 학생을 떠올렸다.

 "제가 학생부장을 처음 맡았을 때 성훈이가 학생회장을 맡았죠. 형인 승현이랑 동생인 성준이도 이 학교를 나왔는데 형제 셋이 모두 학생회장을 했거든요. 봉황기(야구) 응원을 갔을 때 성훈이 녀석이 글쎄 손에 피가 나도록 북을 치고 있는 거예요. 북채를 잡은 손에 피가 나고 목청이 터지도록 응원하던 학생회장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에 동문 선배들도 감동했는지 이때부터 우리 학교 학생회장에게는 동문회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어요."

 인천고 학생회장은 매년 6월, 1학기가 끝날 즈음 선출된다. 꼭 장학금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 학교 학생회장 선거는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 나 있다. 학업에 지장을 준다며 학생회장 자리를 기피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지만 이 학교는 예외다. 학생회장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책임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인고 전교회장의 위상은 웬만한 대학 총학생회장 못지않을 것 같은데요. 야구부 단체응원 갈 때도 학생회장의 동의 없이는 갈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학교폭력 예방과 학교안전지킴이 등 학생부 선생님들이 하던 기본적인 일도 지금은 학생회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축제(미추홀제) 등 학교 주요 행사도 학생회에서 모두 결정해 운영된다. 미추홀제에 초청받는 여학교도 학생회에서 자체 심사를 거쳐 결정할 정도다.

 "학교마다 나름 학풍이 있고 대대로 지켜온 전통이 있잖아요. 야구부와 검도부 등 운동부 학생들도 자신들 학생회장을 존중해 주고, 학교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도 인고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고 보는 것 같아요."

 

한 선생님은 오랜 세월 이어진 학풍 때문에 학교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학생들을 믿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학생 스스로도 "나는 ‘인고맨’이다"라는 긍지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존경하는 스승이 있다. 자신이 이 학교 다닐 때 1학년 담임이셨던 김우일 선생님이다. 지금도 교육 현장에 계셔 가끔 찾아뵙는 은사님이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유일한 총각선생님이셨어요. 저희들은 그분을 형님이라고 불렀죠. 근데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을 하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저를 불러내시는 거예요.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저의 손을 잡고 집까지 데려다 주시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셨죠. 저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각별했거든요. 그때 기대어 울던 선생님의 어깨가 그렇게 넓은지 처음 알았어요."

 그때 그는 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는 그의 스승을 꼭 빼닮은 모습으로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시력은 얼마나 되십니까.

 ▶안경 낀 교정시력은 1.5 정도입니다. 하지만 독수리보다 더 멀리서도 말썽 피우는 학생을 찾아낼 수 있죠. 그건 아마도 동물적인 감각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했던 가장 심한 욕 또는 체벌은.

 ▶예전에 한 번 술 취해 등교한 학생에게 상상도 못할 욕을 한 적은 있지만 지금 그러다가는 큰일 나죠. 욕하면 오히려 친근감을 표시한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평소 즐겨 하는 취미활동은 무엇입니까.

 ▶머리 식힐 겸 바둑을 둡니다. 인터넷 바둑으로 3단 정도 두는데 알파고와 대국을 펼친 이세돌 9단을 보고 지금은 좀 멀리 하는 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가장 호되게 혼이 난 경험은 있는지요.

 ▶야간자율학습 때 몰래 학교 담장을 넘어 도망간 적이 있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정말 호되게 혼이 났죠. 자물쇠로 머리를 맞아 피가 난 적도 있어요.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와 지금 변한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도시락이죠. 그땐 점심시간 전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도시락 까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 길게 줄을 서 급식을 받아 먹고 나면 남는 시간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페이스북이나 카톡 등에 제자인 친구는 몇이나 두고 계십니까.

 ▶사실 페이스북 계정은 있지만 친구들이 별로 없어요. 아이들이 친구 요청을 거부하네요. 저도 사이버 공간이 아닌 학교란 실제 공간에서 아이들을 보는 게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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