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힘은 막강하다. 그리고 그 집단이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를 심판할 때, 그 결단은 정당성을 확보한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다섯 살 남짓의 유치원 여아가 직접 보지 않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성적인 묘사를 한다. 그리고 그 끔찍함의 주체로 한 남성을 지목한다. 이제 어른들과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정신적 충격에 빠진 여아를 보호하고 소아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엄벌함이 마땅할 것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 ‘더 헌트’는 이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을 순리대로 진행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범죄자를 엄벌하는 것이야말로 법과 정의의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기본과 상식이 빗겨간 맹점에 주목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평판 좋은 사람이다.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그는 토박이 친구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의 딸 클라라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클라라는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혼자 있을 때가 많았고 다소 강박적으로 바닥의 선을 밟지 않으려는 행동을 제외한다면 보통의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유치원 원장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루카스 선생님이 그의 신체 부위를 보여 줬다는 것이다. 아이의 증언에는 애매한 부분도 있었지만 묘사는 한결같았다. 이에 루카스는 성추행범으로 낙인 찍혀 고초를 겪게 된다.

사건의 파장은 순식간에 온 마을을 집어삼켰고, 하룻밤 사이에 그를 대하던 모든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지역 마트에는 출입금지령이 내려졌고 모두가 그를 경멸했다. 죽마고우였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등을 돌렸고 심지어 폭행까지 일삼았다. 이후 루카스는 체포됐고 마을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법은 그를 하루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어줬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루카스는 정녕 무죄인가, 아니면 주도면밀하게 증거를 인멸한 유죄인 것일까? 이 사태의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 ‘더 헌트’는 제목처럼 사냥감으로 몰린 한 무고한 남성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이다. 소아 성추행이라는 공분을 살 만한 소식에 지역사회의 집단적 분노는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명확한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풍문을 사실화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 삽시간에 한 사람을 무자비한 폭력 앞에 노출시키는 집단적 광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무책임한 폭력은 이후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증식한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스럽다. 마녀사냥과 모함에 대한 정당화 및 자기방어를 위해 어느새 집단은 더 집요하고 가혹하게 사냥감의 없는 여죄도 추궁해 간다. 과연 이런 모습은 영화 속 허구의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소문과 진실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그 상식에서 빗겨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출구 없는 감옥. 이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로 덴마크 영화 ‘더 헌트’는 2012년 칸 영화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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