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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한국 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다. 급격한 학령인구의 감소로 고교 졸업생 수보다 많은 입학정원을 몇 년 안에 대폭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구조개혁법을 통해 강제성을 마련하려 했으나 결국 법 통과가 안 된 채 19대 국회는 마감하고 말았다. 다양한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구조개혁을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추진케 유도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자율적이라고 하지만 결국 교육부 정책방향에만 눈치를 보다 보니 모든 대학들이 한 방향으로만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프라임(PRIME: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이 대표적이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사회계열 정원을 줄여 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마다의 특수성과 여건이 다르고, 과연 대학 발전이 중장기적 과제인데 현재 시점에서 교육부의 판단대로 많은 대학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정원 조정을 했을 경우 과거 대학졸업생 수요가 늘 것이라는 논리로 대학정원을 무작정 늘려줘 오늘날의 입학정원 과다 문제를 낳은 교육부의 정책 과오를 재연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서양의 대학 역사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1088년 페포네(Pepone)와 로마 법학자 이르네리오(Irnerio)가 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교회법(Canon)과 민법을 가르침으로써 볼로냐 법학의 기초를 세우게 됐다.

 115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이 지역의 학생집단을 자치단체로 공인하고 칙령을 내렸고, 당시 학생들이 도시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 것이 볼로냐대학의 핵심이 됐다.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교사(校舍)를 짓고, 법학뿐 아니라 신학·철학·의학도 강의하게 됐는데, 특히 의학부는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교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상과 같이 서양 대학의 역사는 국가와 도시로부터의 자유와 자율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출현했다. 교육부 한마디에 모든 대학들이 정신없이 뒤따라가는 우리 대학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편,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과거제도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중국에선 587년 수문제 때 거의 완성된 형태의 과거제도가 시행됐고, 우리나라에서는 958년 고려 광종 때 과거제도가 시행됐다.

 과거제도는 그전까지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가 부모들의 관직을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유생 중에서 객관적인 시험을 통해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발탁해서 정치권력까지 분배해 주는 제도로, 당시로서는 서양에 비해 매우 선진적인 관리 등용 방식이었다.

 과거를 통해 발탁된 인재를 교육시키는 기능을 담당한 것이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시초가 된다. 조선에서는 성균관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교육부가 대학에 상당한 관여를 하는 것은 역사적 전통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21세기 대학의 역할은 외부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지고 진리를 자유롭게 탐구하는 상아탑이라는 서양 대학의 전통적인 역할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한편, 나라의 관리를 양성한다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대학의 모습도 오늘날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21세기 이 세상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고, 여기서 사는 인간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대학의 역할과 모습도 따라서 바뀔 것이다.

 신이 아닌 한 며칠 앞의 미래도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중장기적인 미래의 모습을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대학의 역할이 지금보다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보다 인간이 지식과 지혜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 중에서도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식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향후 의학과 생물학 등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삶의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인공지능(AI)과 관련된 부분이 특히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세상을 바꿔 놓을 부분은 인간의 지혜와 관련된 학문이다. 수명이 100년, 150년으로 늘어난 인간이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지금보다 성숙되지 못한다면 그런 인간은 이 세상을 망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대학은 한편으로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주도하는 지식의 본산일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동서양의 지혜를 망라하면서 21세기 새로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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