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진 전 인천안산초교 교장.jpg
▲ 권혁진 전 인천안산초교장
「논어」에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란 말이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스승에게 물었다. "왜 힘든 공부를 해야 하나요?" 공자는 "공부란 태평할 때 군인이 칼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태평할 때 칼을 갈아두지 않으면 갑자기 적이 쳐들어 온 후에 칼을 갈 수가 없어서 적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부도 앞으로 닥칠 세상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한 준비다. 공부는 농부가 농사철이 되기 전에 우물을 파고 둑을 쌓고 농기구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한가한 겨울철에 미리 우물을 파 놓으면 가물어도 논밭에 물을 대고 짐승에게 먹이고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공부는 어부가 항구에서 배와 그물을 손질하고 식량과 연료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미리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것이다. 군인과 농부, 어부들은 내일을 위해 훈련하고 농사 준비를 하고 어구를 손질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무슨 이유에서든지 내일을 위한 준비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도 내일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학원에서,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나 또한 과거 젊은 시절에 공부를 참 많이 했다. 지금 공부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일전에 칠십을 넘긴 노인이 대학에 입학하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런가 하면 칠십을 넘겨 라인댄스를 배우거나 영어 공부를 시작해 5년 후 혼자 해외여행을 하며 언어 구사 능력을 키웠다는 노인들의 삶과 배움은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열정적이다.

 세월은 이름과 함께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난 지금,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순식간에 노인이 돼 버린 것 같다. 세월의 흐름 속에 누구도 인생 과정의 사이클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생활의 지혜가 쓸모없이 변한다는 데 아쉬움은 있으나 흐르는 세월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이 세월을 이기는 것 같다.

 요즈음 주민센터나 복지관, 문화회관 등에서 노인들을 위한 각종 취미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운영의 주체는 기관이지만 강사는 노인이 많다. 누군가가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라 했다. 70대는 무한책임, 무한부담, 무한고독의 3무 세대다.

이런 세대에 품격 있는 웃어른의 행동이 요구된다. 노인이라고 쓸모없는 폐인으로 스스로 인식해서는 안 되며,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실천 가능한 일에 집중하면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프로이트는 사랑, 일, 놀이를 3대 행복의 조건이라 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사랑, 놀이로 여유를 즐길 줄 알면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으로서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품격을 지닌 자세로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요구된다. 조병화 님의 「아름다운 꿈은 생명의 약」이란 책에서 "인간은 꿈을 잃을 때 건강을 잃어 가며 늙어 가는 것이다"라 했다. 조선시대 유명한 재상인 황희 정승은 자상하고 너그러웠으나 유독 아들들에는 엄격했다.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무릇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집안의 사람이 아니라며 자식을 손님처럼 대하면서 아들을 올바른 사람으로 키웠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의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진심 어린 올바른 행동이 자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할 수 있다는 사례다. 윌리엄 조지 조던은 행복이란 자신에 국한되지 않은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에서 싹트는 것이라 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때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밭에다가 힘주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품격 있는 삶을 살았다고 아름답게 대답할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살아가는 방식과 터득한 것도 배운 것도 다르다. 이렇게 형성된 인격이 바로 가치관이며, 자신의 인생관이다. 변화하는 경쟁사회에서 농부가 농사 준비를 하고, 어부가 어구 손질을 하는 것처럼 준비와 도전하는 그 자체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품격을 갖춘 사람이 되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