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해안의 한 작은 휴양도시와 그 주변에 10만 마리 이상의 박쥐가 몰려들어 지역 전체가 1주일 이상 마비되면서 '비상사태'에 빠졌다.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약 300㎞ 떨어진 베이트만스 베이 주민들은 요즘 지역을 점령한 박쥐들로 사실상 집안에 갇혀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주 언론이 26일 보도했다.

주민들은 박쥐 떼가 일으키는 소음과 먼지, 악취뿐만 아니라 정전 피해마저 보고 있다. 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부동산 가격도 급락하는 등 날벼락을 맞았다.

이들 불청객은 호주 박쥐 중 가장 큰 몸길이 25㎝ 안팎의 '회색머리 날여우 박쥐'(grey-headed flying fox)로, 호주 내 전체 개체수의 20% 내지 25%가 현재 이 지역에 몰린 것으로 지역정부는 보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대니얼 스미스는 호주 스카이 TV에 "집 밖을 돌아다닐 수도, 창을 열 수도, 빨랫줄을 이용할 수도 없다. 계속해서 소음을 내기 때문에 집중이 안 돼 책을 볼 수도 없다. 재미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스미스는 또 "박쥐들은 전혀 통제가 안 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역 정치인인 앤드루 콘스탄스는 "이것은 자연재해라고 생각한다. 주민들로서는 재앙"이라고 채널7 방송에 말했다.

현지 대책팀의 러셀 슈나이더는 "이렇게 많은 수를 본 적이 없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책팀은 지역 주민들이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죄수처럼 자신의 집에 갇혀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들 박쥐는 계절을 바꿔 이동하는 데 수 년전부터 이 지역을 서식지로 삼기 시작했고 그 수가 갈수록 크게 늘어 최근의 상황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는 갈수록 커가고 있지만, 이들은 취약종으로 보호를 받고 있어 당국이 함부로 죽일 수도 없다.

대책팀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는 만큼 소음이나 먼지 내는 것을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들이 자리를 잡을 나무들을 베어내는 정도로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보호 단체들은 박쥐들이 준비됐을 때만 자발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현재로는 인내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연방정부의 그렉 헌트 환경장관이 다녀가면서 대책 수립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정부는 사실상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다른 곳에 서식처를 마련하기 위해 250만 호주달러(21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추가로 100만 호주달러(8억5천만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나무들에 매달려 있는 박쥐들<<출처: 호주 공영 ABC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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