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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팔 수 없는 것

한재웅 변호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6년 05월 30일 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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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역할을 한 황정민은 수사대상자가 돈으로 매수하려 하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느냐"고 일갈한다. 그의 말처럼 직업윤리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다. 아니다. 사서도 안 되고, 팔아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경찰이나 공무원 같이 공직자들은 직업윤리를 돈으로 사려는 사람들에게서 유혹을 많이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직자들이 직업윤리는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기본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변호사는 공직자는 아니지만 투철한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법질서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직업이다. 변호사법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변호사윤리규약에서도 변호사는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최근 ‘정운호 로비’ 사건에 등장하는 전관 변호사들은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돈으로 팔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변호사는 법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피의자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지, 판사와 검사들에게 로비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들이 로비를 하는 대가로 수임료를 받았다면 결국 ‘법조 브로커’를 자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이들은 변호사로서의 직업윤리뿐만 아니라 공직자로서 가지고 있던 명예와 자존심도 팔았다. 이번 사건에서 의뢰인이 상상하기도 힘든 거액을 지급한 이유는 해당 변호사가 공직자로서 가지고 있었던 인맥과 명성을 부당하게 이용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변호사들은 로비를 위해서 공직자로서 쌓아 온 인맥을 기꺼이 동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들이 공직생활 동안 보존한 명예와 자존심은 ‘상품(商品)’이 되고 만 것이다.

 변호사가 직업윤리와 자존심을 잃으면 영리한 사기꾼이 되고 만다. 고위 공직자 출신 변호사들은 성공적인 법조 경력을 쌓아온 만큼 변호사로서도 모범을 보여 주길 기대하는데, 이번 사건은 실망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런 사건들이 법조계의 신뢰를 땅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법률시장이 혼탁해지면 사법체계의 뿌리도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우리 법조계에서 전관 변호사들의 배경을 부당하게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기꺼이 이에 응하는 변호사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폐단을 일소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사법체계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전관 변호사들이 퇴임한 임지에서 개업을 제한하는 등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변호사들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과 관련된 의혹 초기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신속하게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것만은 평가받을 만하다.

 최근 법조시장의 변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오로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변호사가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변호사들은 어려운 공부를 시작하면서 결심한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 직업윤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부디 이번 사건이 전거복철(前車覆轍)의 교훈이 됐으면 한다.

 경술국치를 맞아 자결해 순국하신 매천 황현 선생은 자식들에게 남기는 글에서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국가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러왔는데, 나라가 망할 때에 국난을 당하여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어찌 원통치 않은가? 나는 위로는 황천(皇天)이 상도(常道)를 굳게 지키는 아름다움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는다"라고 썼다.

 변호사들이 옛날 선비의 기개를 모두 닮을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의 직업윤리와 자존심을 팔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이 부끄러운 사건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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