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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時調시인
올해 오월 중순은 뜨거웠다. 서울은 80여 년 만의 폭염에다가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이 땅을 달궜다. 충주 수안보는 희한하게도 서울만큼 뜨겁지 않았다. 수승화강(水昇火降), 서울보다 남쪽임에도 기온이 더 낮다.

그러나 그 땅속은 섭씨 53도의 온천수가 끓고 있으니 참 축복받은 곳이라 하겠다. 또한 한강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은 한국 문단의 큰 경사다. 그의 소설작품 「채식주의자」가 시상 당국인 영국에서 그 나라 출신의 훌륭한 영어번역가와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개인의 기쁨을 넘어서 문학의 한류로서 세계화되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소설 분야는 이러할진대, ㈔한국시조문학진흥회(약칭 시진회) 이사장으로서 우리 시조문단의 작금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등단한 시조시인 1천 명이 넘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본인은 아직도 우리 시조계의 입문 문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시진회 기관지 「한국시조문학」 제8호 권두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더 많은 시조시인을 배출하고, 이들을 통해 우리 국민 각자가 쉽게 시조를 짓고 읊조리는 때가 와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다른 시조단체의 초청을 받아 경기지역 행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아는 일이지만 시조학술세미나에서의 발표를 듣고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요즈음 초·중·고 교과서에 현대시조는 물론 고시조도 거의 실리지 않는다는 점, 한두 편 실린다 해도 자유시 속에 섞어 넣어 교육함으로써 시조를 배웠는지조차 모른다는 점, 대학에는 시조에 대한 커리큘럼이 거의 없다는 점과 그날 참석자 중에는 평일이라 그런지 몰라도 젊은 분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 등등…. 참, 은산철벽이다. 시조(時調)가 일본의 하이쿠에 비견할 만큼 우리 겨레 고유 시가의 정화(精華)요, 유구한 전통에 빛난다고 주장해 본들 쇠귀에 경 읽기란 말인가? 아니다. 희망을 갖자! 말한 대로 이뤄지리다!

 그간 시진회는 수안보에서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 등 6회의 행사를 가졌다. 많은 젊은이가 포함된 회원 외에도 가급적 일반인과 지역주민들까지 오게 했다. 우리 시조와 보다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시조문학」지를 통해서는 우리 시조를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해 싣고 있다. 중국어 번역은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선생이 해 주신다.

지금 외국어 번역은 초보 상태에 불과하다. 우리 시조도 한국어를 익힌 외국인이 한국말로 암송하고,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하는 날이 올 것이다. 시조로 받는 노벨문학상 시상 광경을 그려 본다.

 수안보는 3만 년이나 되는 온천지다. 면 단위의 산골지역으로 조금 고즈넉하다. 이제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간 서울·제주 등 대도시 위주에서 잘 가지 않는 읍면 단위 소규모 지역 곳곳으로 갈 것이다. 이들은 단순 눈요기 관광에 그치지 않고, 이왕이면 가장 한국적인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할 것이다. 수안보에 ‘온천 시조비 공원’을 조성하고, 영업하는 식당마다 수안보 관련 시조를 한 편씩 입구나 벽에 걸어놓고 한복 차림으로 외국인을 맞이하면 어떨까?

 앞으로 부설될 전철을 타고 수안보역(가칭)에서 내린 일단의 외국인들이 있다 하자.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마을 길목에 한복대여소를 운영한다고 하자. 이들이 대여받은 한복을 입고 온천욕과 꿩요리를 즐기면서 우리 시조를 읊조리거나 감상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예컨대 석문천변의 ‘온천 시조비 공원’을 둘러보고, 물탕공원이나 곳곳에 조성된 노천(원형)극장 같은 소규모 공연장에서 5~20명 단위로 지역 관광해설사와 함께 우리 시조를 낭송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정경을 상상해 본다. 그것도 직접 익힌 우리말로 말이다. 필요하다면 현재 거의 개방되지 않고 있는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 홍보관을 활성화하자. 그래서 시조와 온천의 역사를 보여 주자. 금년까지 32회째나 되는 수안보온천제 실황 및 시조문예축전의 공연 모습을 동영상으로 상영하는 것도 괜찮겠다.

 현재 수안보 마을의 거리와 개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칙칙한 편이다. 헌 건물들을 포함해 대체로 정돈되지 않은 상태라 할까? 깨끗하고 클래식한 마을 거리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수안보는 한류문화의 중원(中原)이 될 수 있다. 시조와 온천과 한복, 이와 함께하는 한류문화의 적지(適地)로 떠오를 수안보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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