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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움직여도 등골에 땀이 맺히는 날씨다. 태양은 벌써 한여름인 듯 학교 운동장을 뜨겁게 달군다.

 5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인천시 중구 전동에 위치한 전통의 명문 제물포고등학교를 찾았다. 이 학교 최고의 멋쟁이로 소문난 천재영(42)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체육 교과목을 담당하는 천 선생님은 이날도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농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더워도 그의 체육수업에는 열외 없이 모두가 땀 흘리며 몸을 부딪쳐야 한다.

 "사내 녀석들은 원래 몸으로 말하잖아요.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에 학생들과 몸을 부딪치며 운동을 하고 나면 금세 친해지거든요."

 학생부장을 겸하고 있는 천 선생님만의 교육철학이다.

 올해로 14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그는 전체 교직생활 중 10년을 모교인 제물포고에서 근무했다. 이 중 올해까지 만 5년을 일명 ‘학주’라 불리는 학생부장직을 맡고 있다.

 "공립학교 특성상 5년 이상 한 학교에 머물기 힘든데, 모교다 보니 벌써 10년째가 됐네요.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갈 수밖에 없는데, 언젠가 다시 오도록 노력할 겁니다. 제겐 이 아이들이 제자이면서 후배니까요."

 천 선생님의 학교사랑은 유별나다. 단순히 모교라서가 아니라 ‘제고인’이란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 개교한 제물포고는 그동안 재계와 정관계 무수히 많은 인재를 배출해 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유정복 인천시장과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박남춘·정유섭 등 이 학교 출신 2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선배들의 유명세보다 후배에 대한 선배들의 못 말리는 ‘내리사랑’을 자랑으로 여겼다.

 "지난달 학교 야구부가 황금사자기 8강에 진출했을 때 목동경기장에는 재학생보다 선배들이 훨씬 많았죠. 비록 경기는 졌지만 선배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 덕에 선수들도 주눅 들지 않고 끝까지 선전했어요."

 그는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일요일마다 학교를 찾아오는 선배들과 농구 시합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학교 도서관에 가방만 갖다 놓고 선배들 오기만을 기다렸단다. 농구 시합이 끝나면 항상 맛있는 빵과 음료를 잔뜩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주말이면 동문들이 학교를 찾아와 기수별 체육대회와 가족모임을 갖는데, 도서관에 공부하러 나오는 학생들을 잊지 않고 간식 등 먹거리를 챙겨준다고 했다.

 "예전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만을 선발했을 때 학교를 다녔던 선배들과 자신은 다를 것이란 어떤 괴리감도 조금은 느끼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런 선배들을 보며 학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오랜 학풍과 전통이 된 선배들의 모교사랑은 학생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지만 학교 주변이 빠르게 노쇠하고 공동화되면서 나날이 학생 수가 줄고 있다고 걱정했다. 자신이 교사로 부임했을 때만해도 전교생이 1천800여 명에 달했는데, 지금은 ⅓ 수준인 600명도 채 안 된다고 했다. 학급 수도 한 학년에 12반에서 8반으로 줄었고, 학급 정원도 20명 안팎이다.

 더욱이 원도심 특성상 학생 상당수가 부모 없이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와 사는 조손가정 또는 한부모가정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학생부장을 맡은 5년 동안 2번 경찰에 불려 간 적이 있었어요. 제자가 절 폭력교사로 경찰에 신고한 거지요. 분명 학생에게 손찌검한 것은 잘못이죠. 반성도 많이 했지만 그렇다고 학생을 미워할 수 없잖아요.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 건 그때 그 학생에게 좀 더 많은 정을 쏟지 못했다는 거예요."

 꿀밤 몇 대를 쥐어박았다고 폭력교사란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뭐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경찰도 신고가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천 선생님을 불렀지만 오히려 학생을 나무랐을 정도다.

 문제는 당시 자신을 신고한 학생의 어머니도 학생 편에서 천 선생님을 나무랐다고. 그 이후 그 학생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수완(가명)이 어머니는 제가 자신의 아들을 유독 미워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이 걱정돼 혼을 낸 것인데도 어머니가 내 자식은 그럴 애가 아니라며 야단도 못 치게 하셨죠. 이후 녀석이 물건을 훔쳐 소년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더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었죠."

 천 선생님은 수완이 얘기를 꺼내며 지금도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일 중에 하나라고 했다. 수완이를 혼자 키운 어머니 입장에선 그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번 학년 유독 관심을 갖는 학생이 있다. 1학년 태민(가명)이다. 태민이는 중학교 때 패싸움을 해서 법원으로부터 6개월 보호관찰 명령을 받았다. 학기 초에는 태민이가 보호관찰 대상이란 걸 모르게 각별히 신경을 썼지만 이미 학교 내 웬만한 아이들은 다 알 정도로 소문이 나 있는 상태다. 그런 태민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금은 오히려 그가 보호받아야 할 친구인 것을 주변 학생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만에 하나 태민이가 보호관찰 기간 중 말썽을 부리면 소년원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보호관찰 받은 게 무슨 훈장인 양 친구들 사이에서 우쭐대더니 지금은 오히려 그런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친구들과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려 애쓰는 것 같아요."

 천 선생님은 마침 이번 주가 접수 마감인 전교학생회장 후보로 태민이가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제고 학생회는 1·2학년 학년장과 전교회장을 맡을 3명이 1개 조로 구성돼 입후보할 수 있다. 이날 현재 2개 조가 입후보했고, 선거는 오는 15일 치러진다. 입후보한 학생들의 공약을 보면 이미 자율화된 두발부터 생활복 착용, 양심우산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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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는 정말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죠. 단지 대학 입시를 위한 생활기록부 기재용으로 학생회 일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학생회 후보는 선생님 추천도 받아야 하는데, 그 전에 자신이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천 선생님은 학생회장 선거에 단지 공부 잘하는 학생이기 때문에 담임교사의 추천을 받고 학부모 입김이 작용하는 것을 경계했다.

 "지난번 학생회가 참 잘했거든요. 학생회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학교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요."

 지난번 학생회의 역할 때문인지 제고는 올 1학기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 ‘제로’라는 성과를 냈다. 또 학교 진입로 불법 주차로 늘 위험하던 등굣길이 학생회가 여러 차례 캠페인을 벌인 이후부터 점차 불법 주차된 차량이 줄고 있다.

 천 선생님이 최근 가장 고민하는 것은 학생들의 순화되지 않은 언어다. 친구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거의 70~80%가 듣기조차 거북한 욕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학생 자율을 강조하지만 그래도 지나친 복장과 두발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학생이 학생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내면의 학생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언어 습관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금도 그는 지나다 친구들과 욕설로 대화하는 학생을 보면 바로 그 자리에서 푸시업 20개씩을 벌로 시킨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습관을 들인다면 앞으로 그들이 주인공이 될 사회는 더 깨끗하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천 선생님은 자신을 아무리 "꼰대는 어쩔 수 없다"고 비아냥대도 ‘바른 말, 고운 말’을 쓰도록 하는 것은 더 엄해지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미팅은 몇 번 해 보셨나요.

 ▶미팅과 소개팅은 각 한 번씩 해 본 것 같아요. 그땐 제고 교복만 입고 나가도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제고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기억은.

 ▶글쎄요. 가장 자랑스러웠던 기억은 딱히 꼽을 수 없네요. 늘 제고인인 게 자랑스러웠으니까요.

 -농구 말고 가장 잘하는 운동은.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농구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었어요. 학교 야구부도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농구부를 더 많이 응원했거든요. 그리고 축구와 테니스도 좀 합니다.

 -제자가 가장 미울 때는.

 ▶욕하는 제자들이 가장 미워요. 자기들끼리는 친근함의 표시라는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모두 심한 욕설 같아요. 좀 고쳤으면 합니다.

 -가장 기억나는 선생님 별명은.

 ▶제고에는 옛부터 3대 암이라 불리는 선생님이 있었어요. 누구라고 말하긴 곤란하지만, 걸리면 죽는다는 뜻이죠.

 -도서관 빼고 학창시절 가장 많이 다녔던 곳은.

 ▶분식점하고 당구장을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당구장 가는 게 허물이 되지 않지만 그땐 선생님 눈 피해서 정말 자주 다녔던 것 같아요. 학교 근처 심지란 음악다방도 많이 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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