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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혜광학교는 1956년 12월 임경삼 목사가 자택에서 6명의 실명 어린이를 돌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설립됐다.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시각장애 특수학교다.

시각장애인으로 세계 최초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2011년 9월 인천혜광학교 심포니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를 열자 ‘음악교육을 통한 성장 프로그램’이라는 교육계의 호평과 함께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 일화가 유명하다. ‘나는 할 수 있다(I can do anything)’는 자신감을 키워 주기 위해, 올바른 사회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독교 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혜광학교의 유명세만큼이나 학생 사랑이 유별난 교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7일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에 위치한 학교를 찾았다. 이곳에서 올해로 만 16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채태병(44)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시각장애 학생들의 안전과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학생안전부장, 일명 학주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125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40여 명의 교직원 모두가 최고의 교육자입니다. 우리 아이들 역시 최고의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권리가 있거든요."

 2001년 중복장애담당교사로 시작해 2011년 중복장애담당부장에 이어 2013년 학생안전부장을 맡아 올해 4년 차인 그는 자신을 비롯한 이 학교 모든 교사가 학주이면서 교사라고 했다. 특수교육학 전공으로 지금은 사회·한국사 담당 교사도 겸하고 있다.

 학생부장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는 부탁에 그제서야 "학주에 지원한 이유부터 소개하겠다"고 말문을 떼더니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학주에 지원한 데는 남모를 사연이 있었다.

 "둘째인 딸이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소위 왕따(집단 따돌림)를 당해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어요. 아, 이런 일이 정말 생기는구나 싶었죠. 아이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를 계속해 한 달 정도 입원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나중에야 속마음을 알게 됐어요. 당시 아이나 부모인 저 모두 하루하루 사는 게 ‘삶의 지옥’ 같았죠."

털어놓은 사연이 기막혔다. 그게 끝이 아니다. "결국엔 집단 따돌림의 주동자 학생은 강제 전학, 나머지 학생들은 사회봉사활동 등의 처분이 내려졌죠. 학부모로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담임선생님의 처신이었어요. 아이 보호를 위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는 않은 것이 많이 섭섭한 부분이에요. 그 학교 학생부장님이 나선 이후로 문제 해결이 시작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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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채 선생님의 가족은 정든 부평을 떠나 중구 영종지역으로 이사했다. 딸아이를 생각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게 학주에 지원한 이유에요. 학생안전부장으로서 학부모들 앞에 서면 ‘제가 이런저런 일을 겪었기에 우리 학교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려요. 저도 아이 둘을 둔 아버지이기에 학부모들에게 드리는 각오이자 스스로의 다짐이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학생안전부장을 맡고서 본 인천혜광학교 내 학교폭력은 별로 없었다. 물론 학생 간의 말다툼은 간혹 있었지만 화해로 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각장애 학생 간 폭행은 별로 없어요. 그렇지만 보이지 않다 보니 말(대화)로 문제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오해로 비롯되는 말다툼이죠. 아무래도 장애가 있어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스트레스를 말로 푸는 거죠. 하지만 그때마다 상대방이 마음이 아프다면 말한 사람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훈계해요. 결국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그에 따른 배려를 한다면 좋겠다는 말에 아이들이 보통 수긍하는 편이에요."

 또 일반 학교에서 ‘학생부장’이란 직함이 이곳 혜광학교에서는 ‘안전부장’이라 불린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각 학교들이 학생들의 안전문제를 이전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추세이지요. 시각장애인이 다니는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하다 못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안전사고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일반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죠."

 교실 밖을 나가거나 들어올 때 항상 친구들과 부딪힐 위험이 있어 이 학교에서는 아무리 더워도 교실 문을 열어놓지 않고 생활한다. 언제라도 누가 드나들 때 서로가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일반 학교에서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중도실명자 등을 위한 이료(理療)재활교육과정 운영이다. 여기에도 학생안전부장이 담당해야 할 일이 있다. 침·안마 등을 배워 자립하려는 늦깎이 학생들이 대부분으로 평균 나이가 50대인 만큼 젊은 학생들에게서 볼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업 끝나고 술 한 잔을 걸치고 말다툼이 벌어질 경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죠. 하지만 사소한 싸움인데다 나이 든 분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또는 저보다 연세가 높아 ‘형님’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세 마음이 진정되는 분들이 많아요. 꼭 학교를 졸업해 취업 등에 성공해 집안을 살펴야 되지 않겠느냐 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모범을 보이자는 설득도 하고요."

이런 문제는 젊은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학년마다 보통 1학급이 편성돼 유치원 1년부터 중학교·고등학교·전공과(3년)까지 합치면 16년 동안 같은 반에 편성돼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아 허물 없는 사이라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때마다 채 선생님의 답은 하나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 바른 행동이 필요하다."

 기억에 남는 제자를 소개해 달라고 하니 잠시 머뭇거렸다. 또 뭔가 사연이 있는 눈치다. 하늘나라로 떠난 한 제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중복장애담당교사로 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중복장애란 시각장애와 별도의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뇌 문제와 시각장애를 갖고 있던 제자 A양이 혼자 물건을 옮기거나 걷지도 못해 안타까운 마음에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어요. 방학 중에 그 제자가 갑자기 사망해 장례까지 끝나고 나중에야 소식을 접했는데 머리가 복잡했어요. ‘그 애가 학교에서 행복했을까’, ‘아무런 도움도 못 준 교사가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들었고 그때 제 교육관의 변화가 있었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되 아이들의 마음까지 헤아리자는 방향으로요."

 또 다른 제자의 사례도 소개했다. 중도 실명 이전에는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제자가 이 학교에 들어왔다.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온전하니 낙담하지 말고 네 의지를 꺾지 말고 마음껏 펼치라고 자주 말했죠. 그리고 공부하려면 장애가 있으니 무조건 수업 내용을 녹음하라고 조언했죠. 역시나 머리가 좋다 보니 한 번은 제가 맡고 있는 사회 과목의 시험 점수로 1등을 했더라고요. 알고 보니 사회 과목만 1등을 했지만 제 마음속은 짠했어요. 아마 다른 과목까지 1등을 하기에는 힘에 부쳤을 거예요. 선생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만으로도 감격했죠."

 사실 채 선생님도 시각장애인(6급)이다. 6살 때 놀이를 하다 다쳐 시신경이 손상됐다. 그와 비슷한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10여 명의 교사가 이곳에서 함께하고 있다 했다. 그의 아내 역시 인천 영종중학교 특수교육 실무자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시각장애 특수학교 학생안전부장으로서의 바람을 물었다.

 "이곳에서는 1인 1악기제 등을 통한 오케스트라 참여, 스키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사회교과 등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라는 혜광학교의 구호처럼 자립심을 키우는 것을 강조해요. 대학 진학과 취업한 선배의 사례를 자주 소개하는 편이죠. ‘너 역시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거든요."

 그는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우뚝 설 수 있게 충분한 자양분을 주고, 뒷바라지를 해 줘야 하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라고 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불리는 애칭(별명)이 있으신지요.

 ▶글쎄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배우 ‘송중기’라는 별칭으로 불러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학생들에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누구입니까.

 ▶동료 교사였던 이상봉 선생님인데, 제가 평교사일 때 이 학교 정보부장님이셨어요. 옷차림이 교사답지 않을 정도로 수수하셨지만 교육철학 등은 대단하셨어요. 올해 명예퇴직한 후에도 시각장애인 전용 사진 갤러리를 인천에 개설할 정도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애정이 깊으세요.

 -인생 좌우명이나 교육 철학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공짜가 많거나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많으면 좋지요.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이 교훈을 학생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죠. 결국 노력(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죠. 제자들이 안마 등을 배우거나 진학해 자립했으면 좋겠어요. 또 욕심 부리다간 큰코다칠 수 있으니 매사에 신중하려고 해요.

 -평소 즐겨 하시는 운동은 있으신가요.

 ▶학교 내 일명 ‘배신’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배구의 신’ 약자인데 매주 수요일마다 배구를 하는 것을 즐깁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등 학생들이 즐겨 하는 게임도 가끔 해요. 이런 것도 해 봐야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재도 찾을 수 있어요. 젊은 학생들의 마음을 알려면 가급적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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