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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요즘은 개명(改名)이 대세다. 마을의 명칭을 보더라도 한반도면, 김삿갓면, 대관령면, 김유정면 등으로 개정한 이후 그들이 보유한 전통과 역사성이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현격하게 상승시키고 있는 것에서도 자극을 받은 듯하다. 옛것과 전통을 시대 흐름에 맞춰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의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시대에서 지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정체성을 되찾는 노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최근 남구와 동구가 구명(區名)을 변경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천의 도시 확장으로 인해 이제는 동구가 동쪽이 아닌 서쪽에 있고 남구는 남쪽이 아닌 도시 가운데에 있다는 것에서도 기인하겠지만, 지역의 특색이나 정서와 역사성을 전혀 고려치 않고 정해진 구명이었기에 이제부터라도 지역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새 이름으로 바꾸면서 아울러 도시 브랜드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방위식 명칭의 기원은 오래됐다. 중국 ‘황하’의 물줄기를 기준으로 하북과 하남, ‘양자강’을 따라 강남과 강북, ‘태산’을 거점으로 산동과 산서로 구분했고 요동반도의 ‘요하’를 중심으로 요동과 요서가 탄생했다.

 우리의 지명에서도 대관령과 조령(문경새재)을 중심으로 영동과 영서, 영남으로 명명했다. 통일신라시대 9주 ‘5소경’은 중원경, 북원경, 남원경, 서원경 등으로 방위식 지명은 당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됐던 방법이었다.

 지명이란 시대에 따라 변화·소멸되기 마련이다. 행정구역의 변화에 따라 지명의 형태가 부분적으로 변화되기도 하고, 환경이 변화하거나 다른 문화가 유입되면 과거 지명은 새로운 형태의 지명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천’이라는 지명의 출발도 따지고 보면 600여 년 전의 일로 그간 미추홀, 소성, 경원, 인주 등으로 사용돼 왔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일제강점기의 일본식 정명(町名)이 광복 후 구한말의 전통지명으로 환원됐다고는 하나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도 지명이 갖는 속성일 수밖에 없다.

 지명은 사람에게 이름이 있는 것과 같이 땅의 일부에 대해 언어학적 기호인 문자를 이용해 표현한 지리학적 언어이다.

그러나 장소에 지명이 명명될 때에만 비로소 그 존재가 인정되고 다른 곳과 구별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해 모여 사는 인간생활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지명 또는 길 이름 등은 위치를 알려 주고 장소를 표시하는 고유 기능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종종 지명 명명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을 수반하기도 한다. 역명, 공원명, 교량명, 터널명 등에 대한 지역 간 의견 대립도 이로부터 제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68년 전국적으로 구제(區制)가 실시됐는데, 이때 신설된 구의 이름에 방위식 명칭을 부여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중구를 중심으로 동구, 남구, 북구라는 구명이 탄생했다. 그러다 보니 전국적으로 중구와 동구가 6곳, 서구와 남구가 5곳, 북구가 4곳일 정도로 구 명칭이 중첩됐던 것이다.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구 명칭 제정이 오히려 ‘지방의 정체성을 부각시키지 못하게 하는’ 통치의 일환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나, 아마도 먼 미래에 벌어지는 엄청난 변동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을 듯하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예측되지 못했던 급속한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 그리고 사회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자체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심화되는 속에, 한 기점을 중심으로 동과 서를 나누는 방위식의 개념은 이제 그 의미가 퇴색돼 버렸다.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곧 발전과 성장을 의미하는 시대이다 보니 옛 지명을 살리고 오늘의 아름다운 지명을 보존하며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현재의 과제가 됐다. 50년 뒤, 오늘 우리의 결정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중지를 모아야 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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