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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인천차이나타운에 가면 붉은 글씨로 새겨진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해내존지기,천애약비린)’이라는 기념석이 있다.

 ‘한국인천시화교협회’ 이름으로 세워진 이 기념석의 문장을 새겨보면 아마도 고국을 떠나 있는 화교들의 향수(鄕愁)가 담겨져 있는 듯하다. 초당사걸(初唐四傑) 중 한 사람인 천재 시인 왕발(王勃)이 친구와 헤어지면서 지은 ‘送杜少府之任蜀州(송두소부임촉주)’라는 증별시(贈別詩)에 나온다.

 문장이 명문 중의 명문으로 꼽혀 오늘날까지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시문이기에 인용해 본다.

 "삼진(三秦)을 거느린 성궐(城闕)에서 바람과 안개 너머로 오진(五津)을 바라보네. 그대와 이별하는 마음 각별함은, 나 또한 벼슬살이로 떠돌기 때문일 것일세. 이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 있다면, 하늘 끝이라도 이웃과 같으리니. 이별의 갈림길에서, 아녀자처럼 눈물로 수건일랑 적시지는 마세나.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 與君離別意(여군리별의), 同是宦遊人(동시환유인).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天涯若比隣(천애약비린). 無爲在岐路(무위재기로), 兒女共霑巾(아녀공점건)."

 상기 문장 가운데 ‘天涯若比隣’에 나오는 ‘비린(比隣)’은 ‘처마를 잇대고 있는 가까운 이웃’을 뜻한다. 문장 속의 이웃, ‘비린’은 서양 속담처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가 아니다. 진정한 이웃은 세상 끝에 있다 해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친한 사이다.

 흔히 친한 이웃을 일컬어 ‘먼데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먼 곳에 있는 강물로는 가까운 불을 끌 수 없다’는 표현으로 비유하곤 한다.

 이웃(隣)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아름다운 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덕망이 높은 여승진(呂僧珍)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출중한 장수였다. 사람들에게 겸손하고 온화하게 대하는 대인춘풍(待人春風)의 인격자였기에 존경과 추앙을 받았다. 고위 관리를 지내던 송계아(宋季雅)가 퇴직을 앞두고 노년을 보낼 집을 남강군(南康郡)에서 구하러 다녔다. 아는 사람들이 여러 곳을 추천했으나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집을 고르던 송계아는 백만금이면 살 수 있는 집을 열 배가 넘는 천백만금을 주고 샀다. 그 집은 여승진의 바로 옆집이었다. 여승진이 의아해서 새로 이사 온 송계아에게 "왜 집값을 그렇게 비싸게 주고 샀느냐?"고 물었다. 송계아는 "집값은 백만금이나 당신과 이웃하는 값은 천만금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 주택 자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본 송계아다. 그만큼 좋은 이웃의 가치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각종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동네 뒷동산 둘레길도 혼자서는 갈 수가 없다. 최근의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야말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다. 작금의 강력사건들이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가까운 이웃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인심이다.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들었던 향촌의 자치규약 향약(鄕約)과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마을단위로 조직됐던 두레도 사라졌다. 한때 담장을 허물고 주민 간 화합과 친목을 다지기 위한 노력도 있는 듯했으나 요즘에는 이마저 뜸하다. 살 집을 정할 때에는 반드시 이웃을 택해서 정해야 한다는 ‘거필택린(居必擇隣)’이라는 말은 잊혀진 지 이미 오래다.

 이웃 없이 나 홀로 담벼락을 높이 쌓고 호화 저택을 지어 스스로 감옥생활을 하는 일부 부유층을 생각해 본다. 이웃 간 담장은 더 높아가고 철조망도 모자라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에 CCTV 등 사방이 온통 경계시설물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왕발의 친구나 송계아의 이웃 한 사람만 만나도 족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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