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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융합과 어느 인문학자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6년 06월 13일 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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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화투장을 그려 화가 대접을 톡톡히 받던 가수의 그림이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 대작(代作)을 통한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 전 밝혀져 충격을 줬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에게 줘 주문제작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구차한 변명을 해서 더욱 대중의 공분(公憤)을 사게 했다.

그의 삿된 논리로 볼 때, 일부 예술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그림을 남이 대신 그리도록 하는 행위가 적어도 떳떳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조영남 자신의 말처럼 화투장을 가지고 놀다가 망신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어느 케이블 방송의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의 최진기라는 유명 강사는 ‘조선 미술사’ 강의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오원 장승업의 ‘군마도’로 잘못 소개했다는 비판을 받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입담으로 대중을 압도했지만, 실제로 그의 강의는 준비가 치밀하지 못했거나 전공이 아닌 분야에 지식이 깊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전자가 도덕성이 문제였다면 후자는 과욕이 화를 불렀다.

대학에서는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줄줄이 폐과되는 운명을 맞고 있는데, 대학 바깥에서는 인문학 관련 강의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인문학 장사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학과 경영학 등에서도 인문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소위 ‘융합’이라는 단어가 시대의 요청처럼 번져 가고 있다. 대학에서는 융합대학원도 있고 융합학과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융합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heterogeneous) 것을 섞어 물리적으로 결합해 놓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물질이 화학작용을 통해 또 다른 물질로 거듭남을 의미할 것이다.

융합은 시인이 낯선 것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아내는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와 다르지 않다.

 이것은 시인이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적확한 은유(metaphor)를 시에서 사용하는 일과 같다. 강한 시인(strong poet)은 자신의 독창성을 위해 앞선 시인의 영향에 놓이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한 시인만이 역사 속에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생각들을 융합해 영국 문학사에 별처럼 우뚝 솟아 있는 시인이 존 던(John Donne)이다. 17세기 가장 존경받던 존슨 박사는 던의 시를 가리켜 "가장 이질적인 개념들을 폭력적으로 한데 묶어 놓고 있다"고 혹평했다.

존슨이 보기에 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보편적’인 것들을 다뤄야 하는데 던의 시는 너무 정교하고, 부자연스러운 ‘특별함’에 치우쳐 있다고 봤던 것이다. 던의 시가 일종의 ‘조화 속의 부조화’를 추구하고 있고, 서로 닮지 않은 이미지들의 결합 또는 명백히 서로 다른 것들 속에서 초자연적인 것들을 찾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20세기 시인 겸 비평가였던 엘리엇(T.S Eliot)은 던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어 20세기 시인들이 본받아야 할 시인으로 치켜세웠다.

엘리엇은 그의 ‘통합된 감수성(unified sensibility)’을 그의 시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자신의 시를 남들에게 줄 때도 원본 이외에는 사본을 만들지 말기를 바랐지만 그의 시를 읽은 사람들이 종이에 옮겨 적어 지금은 5천여 개의 사본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는 그의 시집이 출간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 출간돼 왔고, 며칠 전 국내에서도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교수가 명퇴해 휠체어 의지한 채 그의 시를 비롯한 고전들을 번역 출간해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저잣거리에서 인문학 장사꾼들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올수록 사전과 조용히 씨름하는 그와 같은 인문학자의 모습은 더 큰 빛을 발할 것이다. 「던 시선(Selected Poems of John Donne)」 김영남 번역·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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